서산 명지리 고분군 ( )

선사문화
유적
충청남도 서산시 대산면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움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이칭
이칭
명지리고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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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충청남도 서산시 대산면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움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개설

명지리고분군은 대산반도 중앙의 망일산 서록 구진마을에서 명지마을에 이르기 전의 왼편 계곡 구릉의 경사면에 있는 움무덤〔土壙墓〕군이다. 이 고분군은 1969년에 모두 18기의 움무덤이 확인되었다.

이 마을에는 이보다도 더 많은 움무덤들이 분포할 것이 틀림없지만 야산개발 등으로 인해 유실된 것이 많으며, 현재 약 15기가 1군을 이루고 있고, 명지마을을 지나서 좌측 경사면에도 3기 정도가 확인되었다. 이 중 제1군에서 2기, 제2군에서 1기 등 모두 3기가 발굴 조사되었다.

내용

제1군 중 가장 높은 곳에 있는 A호분은 40㎝ 정도의 봉토(封土) 높이에 경사면과 같은 방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남북 장경(長徑) 8m, 동서 단경(短徑) 7m 정도의 타원형을 이루고 있다. 토광(土壙)의 장축은 동서향으로 북측 벽의 일부가 무너져 유실되었고, 토광 안에서는 널〔木棺〕을 사용한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유물로는 철제 고리자루큰칼〔鐵製環頭大刀〕, 쇠도끼〔鐵斧〕·쇠가래〔鐵鍬〕등의 철기류와 붉은색 조질(粗質)의 둥근바닥토기〔圓底土器〕가 나왔다.

B호분도 A호분과 같이 남북이 긴 타원형이며 길이 10m, 너비 8m 정도에 40㎝ 정도의 낮은 봉토만 남아 있었다. 광도 A호분과 마찬가지로 수직으로 파지 않고 서벽(西壁)이 하향하면서 45°가량 경사져서 좁게 패어 있다. 토광 안에서는 전형적 백제토기인 회흑색 무늬없는둥근바닥토기〔素文圓低土器〕·철제 고리자루칼·쇠도끼·쇠낫〔鐵鎌〕등의 철기류가 나왔다.

제2군의 C호분은 봉토 높이가 겨우 확인될 정도로 낮았고 광의 구조는 확인할 수 없었다. 크게 파괴된 회흑색 무늬없는둥근바닥토기가 출토되었으나 복원은 불가능하였다.

특징

명지리고분군의 움무덤들은 백제 움무덤으로서는 규모가 아주 작은 것이면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특수한 구조를 하고 있다. 즉, 토광에 널을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되며, 벽도 수직으로 파지 않고 밑으로 내려가면서 차차 좁아지고 있다. 또한 광의 긴 쪽이 경사면과는 직각을 이루며, 부장품의 출토상태로 본 유해는 서침(西枕)하고 있다. 이와 유사한 움무덤은 서울 가락동에서 발굴된 바 있다.

의의와 평가

명지리고분군 움무덤에서 출토된 철제 고리자루큰칼, 쇠낫, 쇠도끼 등과 둥근바닥토기는 이 고분군의 성격과 편년에 중요한 자료들을 제공하다. 명지리고분군은 부여 이외의 다른 지방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순수 움무덤으로서 그 조성시기는 대략 4세기대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한국고고학전문사전-고분편-』(국립문화재연구소, 2004)
『한국고고학사전』(국립문화재연구소, 2001)
『고분연구』(강인구, 학연문화사, 2000)
「대산면 백제토광묘 발굴보고」(김영배·한병삼,『고고학』2,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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