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에 각 관청에 소속되어 행정의 말단 실무에 종사하던 이속직(吏屬職)은 크게 서리직과 잡직(雜職) 계통의 잡류(雜類)로 나눌 수 있고, 다시 서리직은 입사직(入仕職 : 人吏)과 미입사직(未入仕職 : 下典)으로 나눌 수 있다.
그 중 서수는 장고(掌固) 등과 함께 미입사직에 해당된다. 서수는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에 26인, 예문관(藝文館)에 1인, 비서성(祕書省)에 15인, 어서원(御書院)에 25인, 동궁(東宮)에 2인 등 5개 관청에 69인이 배속되어 있었다.
경제적 대우에 있어서는 문종 30년(1076)의 갱정전시과(更定田柴科)에서 서령사(書令史)·사(史)·계사(計史) 등이 전지(田地) 20결을 받고 있고, 한인(閑人) 잡류가 17결을 받고 있어, 그 사이에 해당되는 서수는 대략 전지 17∼20결을 받았으리라 생각된다. 주된 직능은 아마도 그 명칭으로 미루어볼 때 기사자(記事者)의 구실을 하였으리라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