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명일동 주거지 (서울 )

목차
선사문화
유적
서울특별시 강동구에 있는 청동기시대 돌검 · 돌살촉 · 갈판 등이 출토된 집터.
목차
정의
서울특별시 강동구에 있는 청동기시대 돌검 · 돌살촉 · 갈판 등이 출토된 집터.
내용

낮은 구릉 위에 있으며, 유적의 동남쪽은 많이 파괴되어 전체 규모는 알 수 없다. 이 집터는 1961년 고려대학교박물관에 의해 발굴되었다.

집터의 평면 형태나 크기는 알 수 없으나 집안에서는 서쪽 벽을 따라 기둥자리로 보이는 9개 정도의 구멍이 발견되었다. 중심부에 가까운 두 곳에는 숯이 집중적으로 널려 있었고, 그 주변에서 돌검 2점, 돌살촉 7점, 숫돌 4점, 갈판[碾石] 1점 등의 석기와 상당량의 토기조각이 발견되었다.

돌검 2점 중 하나는 점판암으로 만든 것으로, 칼끝이 약간 부러졌는데 몸체 중앙에 능선이 서서 단면 마름모꼴을 이루었고, 자루는 2단(段)으로 되어 있다. 길이는 18㎝이고 칼코와 자루 끝의 너비는 각각 5㎝이다.

돌살촉은 7점 중 2점만이 완전한 것이고, 4점은 파편, 1점은 미완성품이다. 7점 중 3점은 밑이 휘어 들어가고 몸체의 단면이 편평 6각형이며, 1점은 슴베가 있는 형태이다. 완전품의 길이는 각각 4.9㎝와 3.9㎝이다.

숫돌의 4점 중 하나는 반암(斑岩)으로 만든 것으로 장방형이며 길이 7㎝, 너비 1.8㎝이다. 2점은 분암(玢岩)으로 만든 것으로 길이는 각각 8.5㎝와 7㎝이고, 너비는 각각 5.5㎝와 4㎝이다. 다른 하나는 사암(砂岩)으로 만든 것으로 길이 7.5㎝, 너비 3.9㎝이다.

갈판은 집터의 거의 중앙에 놓여 있었으며, 화강편마암(花崗片麻岩)으로 만든 것으로 길이 40㎝, 너비 25㎝이다. 토기는 모두 파편으로 완형을 알 수 있는 것은 없다. 다만, 바닥 2점과 아가리조각 2점이 있어 바닥과 입술의 형태를 알 수 있을 뿐이다.

바닥은 2점 다 납작바닥이며 지름은 각각 16.6㎝와 12.6㎝이다. 아가리조각 중 하나는 밖으로 젖혀진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안으로 약간 기운 형태이다.

토기의 바탕흙은 혈암(頁岩)·석영(石英)·장석(長石)·운모 등이 많이 섞여 대단히 성글었다. 구운 화력의 도수는 낮으며, 표면은 불그스레한 흙빛을 나타내고 있다. 토기의 벽 두께는 1㎝ 내외로 비교적 두껍다.

이 유적에서 발견된 토기 파편 중에는 바탕흙이 대단히 부드럽고 그릇의 두께가 엷고, 빛깔도 회백색·흑색 및 붉은 색을 띤 것이 있다. 이러한 종류의 토기는 민무늬토기문화에 수반되는 일이 많이 있다.

또 돌검의 형식으로 보아 민무늬토기문화의 전기로 보인다. 그것은 밑이 만입된 돌살촉의 형식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점으로도 뒷받침된다.

참고문헌

「광주명일리주거지발굴보고」(김정학, 『고문화』 1, 1962)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