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익공계(翼工系) 단층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 종묘와 더불어 왕조의 기틀로 떠받들어진 만큼 사직단의 정문은 그 규모가 크고 법식이 독특하다.
전체적으로 기둥 간격이 넓고 높이가 비교적 낮으며 지붕이 커서 평활한 인상을 풍긴다. 3칸에 모두 판장문을 달았고, 측면은 담과 연결하기 위하여 벽으로 막았다. 정면에서 기둥 위의 가구를 보면 가는 창방(昌枋)을 기둥 윗몸에 끼우고 같은 위치에 익공을 끼웠다.
익공 위에 뜬 장여를 놓고 외목도리를 받치도록 하여 7량집으로 한 것이 이 건물의 특징이다. 측면에서 보면 대들보와 마룻보가 드러난 2중량(二重樑) 구조이며, 도리와 장여 및 보머리를 돌출시켜 측면을 구성하였다.
이는 삼문(三門 : 삼간으로 지은 대문. 솟을삼문·평삼문)에서 일반적으로 쓰던 방식이다. 사직단이 1394년(태조 3) 처음 세워질 때 정문도 지어졌으나 임진왜란으로 없어졌다.
그 뒤에 재건하였으나 다시 1720년(숙종 46)에 크게 기울어진 것을 바로 세웠다. 현재의 문은 새로 만들어 단 것이며, 문의 위치도 1962년 도시계획을 하면서 원래의 자리에서 14m 뒤로 옮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