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치도(致度). 제조 서경주(徐景霌)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서정리(徐貞履)이고, 아버지는 서문하(徐文夏)이며, 어머니는 정이화(鄭以和)의 딸이다.
1678년(숙종 4) 진사가 되고 1680년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숙부 서문중(徐文重)과 같은 방(榜)에 올랐다.
예문관검열을 거쳐 실록청낭청(實錄廳郎廳)이 되어 『현종실록(顯宗實錄)』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1688년 기사환국으로 인현왕후(仁顯王后)가 폐위될 때 오두인(吳斗寅)·박태보(朴泰輔)와 함께 반대하는 소를 올리고 사직하였다.
1694년 갑술환국이 일어나고 인현왕후가 복위된 뒤 사헌부·사간원·시강원·성균관 등에 소속된 여러 관직을 거쳐 1701년에 승지에 올랐다. 이 때 숙종이 희빈 장씨(張氏)의 자결을 명하자 세자의 생모라 하여 부승지 윤지인(尹趾仁)과 함께 반대하였다.
이어 종부시정(宗簿寺正)에 올라 지제교(知製敎)를 겸하였다. 홍천현감으로 나가서는 백성들의 진휼에 힘썼으며, 임천군수·인천부사를 거쳐 광주부윤이 되어서는 군대의 정예화에 주력하였고, 돌아와서 호조와 예조의 참의를 역임하였다. 1709년 강원도관찰사로 나가서 백성의 부담을 덜고 원주 등지의 병력을 정예화하는 데 힘썼다.
돌아와 첨지중추부사를 거쳐서 장례원판결사에 이르렀다. 항상 『자경편(自警編)』을 읽었으며, 스스로 『속자경편(續自警編)』 5권을 저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