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권 2책. 목활자본. 1820년(순조 20) 현손 목(穆)이 편집하고, 1866년(고종 3) 후손 명규(命奎)에 의해 다시 보완을 거쳐 1911년 간행되었다. 권말에 목과 명규 등의 발문이 있으며, 후손 주원(胄元)의 지가 있다. 국민대학교 도서관·고려대학교 도서관·성균관대학교 도서관·연세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권1∼3에 시 164수, 서(書) 25편, 잡저 6편, 제문 10편, 가장 5편, 권4에 부록으로 행장·유사·묘갈명 각 1편, 만사 8수, 제문 6편, 봉안문 1편, 축문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서의 「상명재윤선생(上明齋尹先生)」은 김집(金集)의 『의례문해속(疑禮問解續)』, 김장생(金長生)의 『의례문해(疑禮問解)』·『가례집람(家禮輯覽)』, 신의경(申義慶)의 『상례비요(喪禮備要)』·『예기』·『가례』 등을 근거로 예설(禮說)에 대한 의견을 밝힌 것이다.
「서시아배(書示兒輩)」는 학문을 하다가 의문점이 있으면 지나칠 것이 아니라 반드시 자세히 살펴서 알아야 된다는 것과, 밤을 새워가며 글을 읽는 것은 건강에 해로우니 적당한 수면을 취할 것 등 7개항을 지시한 글이다.
「독성당화첩후지(獨醒堂畫帖後識)」는 외할아버지가 태백산 밑에서 당화(唐畫) 1권을 구해서 그것을 모사하였는데 신선도·산수화·화조도 등 99폭이나 되어, 진기한 것이 살아 있는 것과 같다고 칭송하면서 가보로 삼겠다는 뜻을 밝힌 글이다.
「봉송송월이공금강지행(奉送松月李公金剛之行)」은 이시선(李時善)이 금강산 탐방을 할 때 준 글로, 칠십 고령에도 관광과 학문을 게을리 하지 않는 기개를 치하하고 탐구는 학문의 일종이라고 칭찬한 글이다.
그밖에도 천연두를 쫓기 위해 쓴 「송두신문(送痘神文)」이 있고, 영물(詠物)로 정상과 경치를 잘 표현한 시 「노방송(路傍松)」·「동벽도(冬碧島)」·「옥순봉(玉筍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