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백원(百源), 호는 신묵재(愼默齋). 반곡(盤谷) 출생. 아버지는 성세환(成世煥)이며, 어머니는 여흥진씨(驪興陳氏)로 진후번(陳後蕃)의 딸이다.
평생 동안 학문 연마에 힘쓰며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고, 역학(易學)을 깊이 연구하여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오의(奧義)를 터득하고 천기(天機)와 인사(人事)를 예견하여 재액에 대비하였다.
역리가 이해하기 어려움을 실감하고 알기 쉽도록 도해(圖解)하여 제자들을 가르치고 경(敬)을 학업의 근본으로 삼도록 지도하였으며, 왕도정치를 시행하여 국태민안(國泰民安)하도록 왕에게 건의하고 과거제도의 개혁과 농공(農工)의 중요성을 상소하여 그 시정책을 요구하였다.
성리학에 있어서는 천인성명(天人性命)의 발현이 사단칠정(四端七情)이며, 이기(理氣)의 표리(表裏)로 동시에 나타난다고 주장하여 이황(李滉)의 호발설(互發說)에 따랐다. 저서로는 『신묵재문집(愼默齋文集)』 2권, 『신묵재홍범구주황극도설(愼默齋洪範九疇皇極圖說)』 1권, 편서로는 『신묵재인역괘효(愼默齋人易卦爻)』 상·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