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야로(冶爐). 자는 경숙(敬淑), 호는 신연(新淵). 야성군(冶城君) 송길창(宋吉昌)의 후손이다.
성주에 거주하였으며, 1570년(선조 3) 생원시에 합격하여, 과거를 준비하다가 경기전참봉(慶基殿參奉)이 되었으나 곧 사직하고 향리에 은거하였다.
이 후 정구(鄭逑)·김우옹(金宇顒)·최영경(崔永慶) 등과 교유하면서 학문을 닦았다. 평소 몸가짐이 견고하고 온화하면서 강건한 태도를 지녀 조식(曺植)이 송사이의 집을 자주 찾아가 고금의 일을 토론하였다 한다.
정구도 송사이를 엄한 스승과 같이 대하며 함께 의리를 강구(講究)하면서 동향의 선비들과 월강(月講: 매월의 학문을 연구하고 토론함)의 계(契)를 맺기도 하였다고 한다. 성주의 회연서원(檜淵書院)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