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권 10책. 목판본. 서문과 발문이 없어 간행경위를 알 수 없다. 국립중앙도서관·규장각 도서·장서각 도서·성균관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권1·2에 시 310수, 권3∼7에 소차(疏箚) 87편, 권8에 연주(筵奏) 3편, 수의(收議) 24편, 권9에 책문(冊文) 2편, 교문(敎文) 4편, 불윤비답(不允批答)·능지(陵誌)·악장(樂章) 각 1편, 제문 29편, 권10에 제문 13편, 서(序) 6편, 기 2편, 발 3편, 권11에 설 2편, 논 1편, 서후(書後) 3편, 상량문 1편, 모연문(募緣文) 2편, 묘지 6편, 권12에 묘갈 3편, 묘표 12편, 권13에 행장 2편, 권14∼16에 시장(諡狀) 6편, 권17에 잡저 13편, 권18·19에 서(書) 55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저자는 숙종조에 영의정까지 이른 고관이었으므로 그의 여러 저작은 사료로서의 가치가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것은 소차로서 「논윤증패의차(論尹拯悖義箚)」·「인최석문등소저인죄신론윤증사차(因崔錫文等疏詆引罪申論尹拯事箚)」 등 주로 당쟁에 관한 것이 많은데, 특히 윤증이 송시열(宋時烈)을 헐뜯었다고 논박한 것들이다.
1694년(숙종 20) 11월 7일 경연(經筵) 주사(奏事)에서는 이황(李滉)의 『심경부주(心經附註)』 후론(後論)에 대하여 송시열이 석의(釋疑)를 붙인 것은 송시열이 이황을 존경하는 도리에 조금도 손상이 되지 않은 일이라고 하였다.
모연문에는 「신륵사개와모연문(神勒寺蓋瓦募緣文)」과 「가릉암모연문(嘉陵菴募緣文)」이 있으며, 서(書)에는 박세채(朴世采)·권상하(權尙夏)·신완(申琓) 등과 정사(政事)를 논한 것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