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는 바퀴를 달아 짐을 옮기는 데 쓰는 기구이다. 바퀴 수는 둘 또는 네 개짜리가 대부분이다. 손수레처럼 바퀴를 한 개를 붙인 것도 있고, 그 이상을 달기도 한다. 신라나 가야시대의 옛 무덤에서는 수레 모양의 토기가 출토되는데 형태가 매우 정교하다. 이를 미루어 볼 때, 우리나라에서 수레는 오래전부터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1796년에 낙성된 수원성의 축성 경위를 적은 『화성성역의궤』의 기록에는 평차·발차 따위가 보인다. 우리나라의 수레는 소나 말의 힘을 빌려 짐을 운반하는 달구지가 주종을 이루었다.
수레의 바퀴 수는 일정하지 않아서 둘 또는 네 개짜리가 흔하나, 초헌이나 손수레처럼 한 개를 붙인 것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여덟 개를 쓰며, 그 이상을 달기도 한다.
바퀴 하나짜리의 손수레는 손잡이가 양쪽에 있어 평형을 유지하며, 초헌은 한 사람이 앞으로 끌고 다른 한 사람은 뒤에서 밀어 움직인다.
바퀴의 종류도 매우 다양하다. 초기에는 좁게 켠 둥근 통나무 중앙에 구멍을 뚫고 축대를 박아 썼으나, 뒤로 오면서 축 주위에 살을 박고 이에 빗등을 둘러서 바퀴가 튼튼해지고 틀 자체의 무게도 덜게 되었다.
근래에는 빗등을 보호하기 위해 텟쇠를 덧대어 쓴다. 또 자전거나 자동차처럼 땅에 닿는 면적을 줄이고 차체의 충격도 흡수하는 고무바퀴가 고안되었으며, 반영구적인 철제 바퀴도 등장하였다.
수레가 언제 발명되었는지는 잘 알 수 없으나 기원전 3000년경에 서아시아에서 처음 썼으리라고 믿어지며, 기원전 2500년쯤에 바빌로니아에서 바퀴 주위에 구리판을 덧씌운 전차(戰車)가 등장하였다. 그리고 기원전 1500년경에는 이집트나 미케네 등지에서 여러 개의 살을 박아 만든 수레바퀴가 실용화되었다.
한편, 기원전 1300년경인 중국 은(殷)나라에도 바빌로니아의 것과 비슷한 전차가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수레를 사용한 시초에 대한 기록은 없으나, 신라나 가야시대의 옛 무덤에서 수레 모양의 토기가 출토되고 그 형태가 매우 정교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아주 일찍부터 이용하였으리라고 보인다.
출토된 전차 중에는 바퀴가 둘 달리고 전면을 제외한 삼면에 틀을 박아서 앉는 이의 안전을 도모한 것이 있다. 또 틀바닥 앞쪽에 채를 걸고 그 끝에 가로막대를 대었으며, 이를 V자형의 멍에에 걸어 말 두 마리가 끌도록 되었다.
한편, 1796년에 낙성된 수원성의 축성 경위를 적은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의 기록에는 평차(平車) · 발차(發車) 따위가 보인다. 평차는 일반 달구지보다 간단하며 발차는 평차보다 작고 통나무 바퀴를 달아 놓았다. 이러한 수레들은 일상용이라기보다 장기간에 걸치는 공사장에서 필요에 따라 만들어 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이 타기 위한 마차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것은 1884년 3월의 일로 박영효(朴泳孝)가 바퀴 두 개의 마차를 일본에서 들여왔고, 이보다 조금 뒤인 1894년에는 일본인 하나야마(花山帳場)가 10대의 마차로 시내와 서울∼인천 사이를 운행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러한 승합마차(乘合馬車)는 광복 후 서울 거리에 나타나서 중요 교통수단이 되었으나 6 · 25전쟁 뒤에 자취를 감추었다. 당시의 마차는 네 필의 말이 끌었으며, 30여 명이 탈 수 있는 크기였다.
자동차는 1908년에 프랑스에서 수입하여 고종이 타고 다닌 것이 시초였으며, 1869년경에 일본인이 발명했다는 인력거도 마차와 거의 같은 시기에 들어와 6 · 25전쟁 무렵까지 이용되었다.
우리나라의 수레는 짐수레, 곧 소나 말의 힘을 빌려 짐을 운반하는 달구지가 주종을 이루었는데, 북한식과 남한식의 두 종류가 있다.
남한식은 틀 앞쪽에 두 가닥의 쳇대를 따로 붙이고 이를 소 등에 얹은 길마에 연결해서 소가 몸으로 끈다. 민족항일기에는 네 바퀴짜리도 등장하였으며, 이것은 앞바퀴가 뒤의 것보다 작고 무엇보다 좌우로 움직일 수 있어 방향을 바꾸는 데 편리하였다.
이에 비해 북한식은 틀과 한몸을 이룬 쳇대를 소의 목에 얹은 멍에에 연결하여 달구지를 목뼈의 힘으로 끈다. 따라서 틀 길이가 5∼6m에 이르며, 바퀴도 매우 커서 지름이 1.5m나 되는 것이 보통이다.
남한식은 틀 바닥에 널빤지를 촘촘하게 깔아 놓으나 북한에서는 4, 5개의 세장을 듬성듬성 질러 놓았을 뿐이며 잔 물건을 실을 때는 자리를 따로 펴야 한다.
북한식 달구지의 이러한 구조는 길이 험해서 언덕 아래로 달구지가 굴러내리는 경우, 소에게는 피해가 없도록 하기 위한 배려의 결과이다. 또 큰 바퀴를 달아 달구지의 바닥을 높인 것도 돌에 걸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다.
다음은 남한식 달구지의 부분 명칭도이다.
① 쳇대:달구지를 마소의 등에 연결하는 두 개의 긴 막대로, 길이는 보통 1.8m 내외이다. ② 쳇대고리:쳇대를 마소의 길마에 걸어 주는 작은 쇠고리.
③ 사장:달구지의 몸을 이루는, 세로로 댄 긴 판자(이에 비해 ‘세장’은 사장을 받치는 동시에 좌우 양 틀을 고정시키는 구실을 하는 각목재로, 몸채에 세로로 놓음).
④ 갈고리:짐을 잡아맨 끈을 걸어 두기 위해 장틀에 붙인 아귀진 쇠붙이. 마소의 힘이 부칠 때는 줄을 이에 걸어 사람이 끌기도 한다.
⑤ 텟쇠:바퀴를 보호하기 위해 둘러 놓은 쇠. 철판을 구부려서 둥글게 만들고 양쪽을 이은 뒤에 바퀴에 씌운다.
⑥ 빗등:바퀴의 테를 이루는 목재. 이것은 반드시 단단한 괴목(槐木)으로 만드는데, 뒷바퀴는 7개, 앞바퀴는 6개로 이루어진다.
⑦ 살:바퀴테를 유지하기 위해 빗등과 장구통 사이에 끼우는 것으로 참나무로 만들며 뒷바퀴에는 14개를, 앞바퀴에는 12개를 붙인다.
⑧ 장구통:중앙에 구멍이 뚫린 수박만한 나무통으로 살이 모두 여기에 꽂히며 괴목으로 만든다.
⑨ 간철:장구통을 보호하기 위해 통 안팎에 둘러 놓은 쇠.
⑩ 메뚜기:축이 수박통에서 빠져 나가지 않도록 축 구멍에 꽂는 쇠.
⑪ 거덜이관자:앞바퀴 축에 붙은 판과 쳇대를 연결시켜 주는 쇠붙이.
⑫ 장틀:달구지의 몸 양편에 대는 좁고 긴 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