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녀지기」는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이다. 20세기 초에 활발하게 유통된 것으로 보이는 이 작품은 여진주와 화홍미라는 두 여성 인물의 지기 관계를 그린 작품으로, 지기에 대한 상층 여성들의 욕망을 그리며 여성들의 윤리나 주체성을 강조하고 있다.
3종의 국문 필사본과 수종의 구활자본이 있다. 국문 필사본은 이화여자대학교 도서관 소장본(5권 5책), 일본 동양문고 소장본(5권 5책),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본(3권 3책)이 있고, 구활자본은 유일서관본(1916), 한성서관본(1916), 박문서관본(1924) 등이 있다.
이 작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명나라 시절 소주에 사는 선비 여장(呂壯)은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한림편수가 된다. 그의 부인 관씨는 딸 진주(眞珠)를 낳고 병으로 죽는다. 조정에서 간신이 세력을 얻음에 따라 여 한림(여장)은 항주의 추관으로 내쫓긴다. 악당 소준이 과부를 겁탈하려다가 과부가 죽게 되자 여 추관(여장)은 소준을 잡아들인다. 소준이 옥중에서 자살하자 그의 아들이 자객을 시켜 여 추관을 살해한다.
여 소저(여진주)는 제 시랑에게 돈을 얻어 아버지를 선산으로 이장하고, 유모의 딸 주영과 자매의 의를 맺고 제 시랑의 집 하녀로 들어간다. 제 시랑의 큰딸 초요는 여 소저의 미모를 시기하여, 여 소저에게 노래와 춤을 가르쳐 여 소저를 기생으로 팔도록 아버지를 조른다. 초요의 동생 초주가 이를 여 소저에게 알리고 여 소저는 미친 체하여 위기를 면한다. 여 소저는 주영과 함께 산으로 약초를 캐러 갔다가 화 상서의 딸을 만나 의형제를 맺는다. 화 상서는 간신의 모해를 피하기 위해 벼슬을 그만두고 귀향한다.
한편, 제 시랑이 변방에 출정하였다가 진 상서의 모함에 빠져 돌아오지 못하게 되자, 제 시랑의 부인은 여 소저를 진 상서에게 바쳐 남편의 위기를 해결하려고 한다. 초주가 이를 알려 주어 여 소저는 주영과 함께 고향에 가 있는 화 소저에게로 달아난다. 화 상서는 딸과 의형제를 맺은 여 소저를 수양딸로 맞이한다. 단신으로 유람을 떠난 화 상서는 청암사에서 세 사람의 미소년을 만나는데 그중 상희복을 사위로 삼는다.
한편, 배우정이 화 상서의 딸에게 청혼했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자, 그 분풀이로 황제의 누이동생인 자기 어머니를 움직여 화 소저를 황제의 후궁으로 추천한다. 황제의 교지를 받은 화 소저는 궁궐에 들어가 죽기를 결심하고 황제에게 아뢴다. 여 소저도 상소를 올려 교지(敎旨)를 거둘 것을 상소한다. 상소를 본 황제가 교지를 거두어들이고, 화 소저와 여 소저는 함께 상희복을 남편으로 맞이한다.
이 작품은 여성 간의 우의를 주제로 한 윤리소설로 지기지우(知己之友)를 맺은 여성들이 서로의 위기를 구원해 주는 내용이다. 고전소설에서 규방 안의 화목이나 처첩 간의 불화에 대한 교훈으로 여자끼리의 화목을 다룬 예는 있으나, 여자를 주인공으로 하여 이들의 우정에 관한 이야기를 작품의 주된 내용으로 다룬 예는 이 작품 외에 찾아볼 수가 없다.
남성 간의 우의를 표현한 작품으로 「보심록(報心錄)」이 있으나, 구성과 주제에 있어서 공통점은 없다. 이와 같은 내용과 주제의 독창성은 여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보여 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결말에서 지기지우를 맺은 여성들이 한 남성을 같이 섬기는 것으로 끝나는 것은, 다른 고전소설의 일부다처주의와 전통적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아울러 이 같은 혼인 관계에서 남편은 수동적인 존재로서 여성들의 지기 관계의 회복이나 지속을 위해 등장했으며, 가부장제 남성들의 욕망에 기반했다기보다는 여성들의 자기 욕망에 기반해서 등장한 인물로 보는 견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