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승가사 ( )

불교
유적
통일신라 시대, 수태가 승가대사상을 조성하며 창건한 서울 종로구 북한산에 있는 사찰.
유적/건물
소재지
서울 종로구 비봉4길 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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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승가사는 통일신라 시대 수태가 승가대사상을 조성하며 창건한 서울 종로구 북한산에 있는 사찰이다. 고려시대에는 재해의 극복을 위해 국왕들이 행차하여 법회를 열었고, 조선시대에는 왕실의 약사신앙으로 유명했다. 세종 대 선교양종의 선종 18사의 하나였으며 조선 말에도 왕실의 기도처로서 지원을 받았다.

정의
통일신라 시대, 수태가 승가대사상을 조성하며 창건한 서울 종로구 북한산에 있는 사찰.
건립경위

서울 북한산(北漢山)에 있는 천년 고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인 조계사(曹溪寺)주1이다. 통일신라시대 756년(경덕왕 15)에 낭적사(狼迹寺)의 승려 수태(秀台)가 창건했으며, 인도 출신으로 당나라 고종 때 장안 천복사(薦福寺)에서 대중을 교화하며 관음보살의 화신으로 받들어지던 승가(僧伽)대사의 상을 바위 굴 속에 조각했다고 한다.

변천

고려 예종 때 이예(李預)가 찬술한 「삼각산중수승가굴기(三角山重修僧伽崛記)」에 의하면, 역대 국왕들이 천재지변이나 가뭄 등을 극복하기 위해 승가굴에 행차하여 법회를 열었다고 한다. 1024년(현종 15)에 지광(智光)과 성언(成彦)이 중창했고, 1090년(선종 7)에는 구산사(龜山寺)의 주지였던 영현(領賢)에게 왕명으로 중수하게 했다.

1099년(숙종 4)에는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이 국왕과 왕비를 모시고 참배하면서 불상을 주2 법당을 중수했다. 조선시대에는 왕실의 치병을 위한 약사신앙(藥師信仰) 도량으로 유명했다. 함허(涵虛) 기화(己和)가 출가 전에 승가사의 승려와 대화를 나누다가 불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도 한다.

세종 대인 1424년(세종 6)에 기존의 7종을 선교양종(禪敎兩宗)을 통합할 때는 선종 18사에 속했는데, 당시 원래 가지고 있던 전지 60결에 추가로 90결을 더해 총 150결의 보유 전지가 인정되었고 승려 70명이 머물렀다. 18세기에는 북한산성 의승군 제도가 확립되었고 승가사도 일정한 역할을 담당했다. 이후 여러 차례의 주3주4를 거쳤고 19세기 말 고종 때 민비와 엄상궁의 시주를 얻어 중창했다.

1941년에 도공(道空)이 다시 중수했다가 6·25전쟁 때 소실되었으며, 1957년에 비구니 도명(道明)이 중창하여 대웅전(大雄殿)영산전(靈山殿) · 약사전(藥師殿) 등의 전각을 갖추었다. 이와 함께 산신각(山神閣) · 향로각(香爐閣) · 동정각(動靜閣) · 범종각(梵鐘閣) 등도 세워져 있다.

의의 및 평가

사찰의 문화유산으로는 1989년 보물로 지정된 석조 승가대사 좌상이 유명하며, 1963년 보물로 지정된 고려 초의 마애여래 좌상도 인근에 있다. 마애불과 약사전의 약사여래는 그 영험함으로 인해 승가사를 기도처로서 이름나게 했다.

참고문헌

원전

『고려사(高麗史)』
『동문선(東文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단행본

권상로 편, 『한국사찰전서』 (동국대 출판부, 1979)
『문화유적총람』 (문화재관리국, 1977)

논문

남동신, 「북한산 승가대사상과 승가신앙」 (『서울학연구』 14, 서울시립대 서울학연구소, 2000)
최성은, 「삼각산 승가사 석조승가대사상 소고」 (『보조사상』 49, 보조사상연구원, 2017)
주석
주1

불교의 한 종파의 우두머리인 큰절의 관리를 받는 작은 절. 또는 큰절에서 갈라져 나온 절. 우리말샘

주2

불상에 금칠을 다시 하다. 우리말샘

주3

절이나 왕궁 따위를 보수하거나 고쳐 지음. 우리말샘

주4

건축물 따위의 낡고 헌 것을 손질하며 고침. 우리말샘

관련 미디어 (4)
집필자
김용태(동국대학교 교수, 지역불교 및 불교사 연구(조선시대 불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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