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궁관(東宮官)은 국초부터 있어왔으나 그것이 크게 정비된 것은 1022년(현종 13) 태자제도(太子制度)의 성립을 본 뒤 문종 때에 이르러서이다. 이때는 제반제도가 정비되는 때로, 왕족에 관한 제도, 즉 봉작제(封爵制)의 성립, 제왕부(諸王府)의 설치, 종실록(宗室祿)의 제정 등도 이루어졌던 것이다.
시위급사는 1053년(문종 7) 문종이 맏아들인 훈(勳)을 왕태자로 책립한 뒤 1054년 왕태자의 시위를 맡게 하기 위하여 시위공자(侍衛公子)와 함께 두었던 관직으로, 5품 이상 관원의 손자와 7품 이상 되는 관원의 아들 중에서 10인을 선발하였다.
중국 송대(宋代)에도 왕족이나 공훈자 또는 고급관료의 자제로 시위를 삼아 왕의 친위관(親衛官)으로 삼았던 예가 있었는데, 시위급사도 어의 그대로 태자를 보호하는 친위관의 구실을 하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