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 노남리 남파동 고분군 ( )

선사문화
유적
북한 자강도 시중군에 있는 철기시대 이후 돌무지무덤 · 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이칭
이칭
남파동고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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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북한 자강도 시중군에 있는 철기시대 이후 돌무지무덤 · 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개설

1967년 독로강댐 수몰지구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발굴되었다. 노남리 일대에는 3개의 고분군이 있는데 간평고분군, 남파동고분군, 내평고분군이 그것이다. 이 중 남파동고분군은 노남리에 있는 고분군 중 고분의 수가 340기로 가장 많고 규모도 제일 크며 돌무지무덤〔積石塚〕과 돌방무덤〔石室墳〕이 혼합되어 있다.

내용

남파동고분군은 3군으로 구분된다. 제1군은 강기슭의 무기단식 돌무지무덤으로 모두 강돌로 축조되었다. 제2군은 제1군의 동쪽에 잇대어 자리잡은 기단식 돌무지무덤과 봉토분으로 혼합되어 있는데 이 고분군의 중심을 이룬다. 제3군은 다소 동쪽으로 떨어진 경사면 위에 축조된 고분들로서 무기단식 돌무지무덤 3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봉토분들이다. 축조된 순서는 무기단식 돌무지무덤→기단식 돌무지무덤→돌방무덤(돌방봉토무덤) 순으로 형성되었음이 밝혀졌다.

무기단식 돌무지무덤으로 가장 대표적인 것은 제98·104·107·108·112호분이다. 모두 강자갈을 이용해 네모모양 또는 장방형의 묘대(墓臺)를 쌓고 그 중간에 1개 또는 2개의 장방형 덧널〔槨〕을 축조해 시신을 안치한 뒤 판석을 덮어 무덤을 완성하였다. 축조한 뒤 강자갈이 흘러내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봉분 형태가 방대형(方臺形)으로 되어 있다. 크기는 보통 한 변의 길이가 5∼6m, 높이가 약 2m 정도이다.

이들 무기단식 돌무지무덤에서 출토된 토기는 갈색을 띠고 그릇 표면을 간 것으로 노남리의 초기철기시대 집자리에서 출토된 것과 같다. 철제유물로는 도끼날모양화살촉, 손칼 등이 출토되었다.

기단식 돌무지무덤은 다듬은 깬돌로 장방형 테두리를 만들고 강돌로 내부를 채워 1단을 만든 후 그 위에 같은 방식으로 조금 작은 장방형 테두리를 쌓아 점차 좁혀가다가 마지막단을 판석으로 덮어서 마무리하였다. 남파동고분군에서는 이러한 형식의 돌무지무덤이 상당히 많다. 시신을 안치한 돌덧널〔石槨〕은 대체로 1단 위에 축조하였다. 이러한 형식의 대표적인 것으로 제32·33·100·133·162·163호분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중 제133호분에서는 청동팔찌와 청동편, 다리모양 손잡이가 달린 작은 항아리가 출토되었으며, 제163호분은 돌덧널이 2개로써 시신 머리쪽에서 바리모양〔鉢形〕토기 2점이 출토되었다.

덧널방(槨室)은 1단 위에 설치되었는데, 두 가지 형식이 있다. 하나는 무기단식 돌무지무덤의 경우와 같고, 다른 하나는 덧널방에 널길〔羨道〕이 달린 것으로써 이와 같은 형태의 고분으로는 제32·33·100호분 등이 대표적이다.

제100호분은 길이 9m, 너비 8m이며, 두 번째 기단까지 남아 있다. 덧널방은 길이 180㎝, 너비 50∼60㎝ 정도로 첫째 단, 즉 묘대 위에 깬돌으로 축조되었으며, 서쪽에 널길이 붙어 있다. 덧널방 바닥에는 잔자갈을 깔았고, 덧널방과 널길 사이에는 깬돌을 세워 막았다. 제32호분과 제33호분도 모두 둘째 기단까지 남아 있고 덧널방에 널길이 달렸다.

돌방무덤은 여러 기가 확인되었는데 외방무덤〔單室墳〕과 여러방무덤〔多室墳〕으로 구분된다. 외방무덤은 널방의 방향에 따라 널방 바닥이 널길보다 낮은 서남향, 그 밖의 서남향, 정남향 또는 서쪽으로 치우친 남향, 동쪽으로 치우친 남향 등 4종류로 세분된다. 여러방무덤은 크게 두방무덤과 세방무덤으로 세분되는데 기본 구조는 외방무덤과 거의 유사하다.

이들 돌방무덤의 천장은 평천장(제3·102·125·170호분), 꺾음천장(제30·31·130호분), 궁륭천장(제100·140호분), 평행고임천장(제99호분), 삼각고임천장(제96호분) 등 다양한 형식을 보여주고 있다.

의의와 평가

남파동고분군은 무기단식 돌무지무덤에서 기단식 돌무지무덤으로, 기단식 돌무지무덤에서 돌방무덤(돌방봉토무덤)으로의 묘제 변천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구덩식〔竪穴式〕덧널방을 가진 무기단식 돌무지무덤은 구덩식 덧널방을 갖춘 기단식 돌무지무덤으로 변화하였고, 다시 덧널방에 널길이 달린 기단식으로 발전하였으며, 마지막으로 굴식〔橫穴式〕돌방무덤으로 변천하였다. 무기단식은 대체로 서기전 3∼1세기경부터 초기철기시대에, 기단식은 서기 2∼3세기경에, 굴식 돌방무덤은 4세기경 이후에 등장하여 성행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널길 표시가 있는 기단식 돌무지무덤은 돌방봉토무덤의 연원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참고문헌

『고구려 유적의 어제와 오늘-고분과 유물-』(동북아역사재단, 2009)
『한국고고학사전』(국립문화재연구소, 2001)
『고구려벽화고분』(최무장·임연철, 1990)
「압록강·독로강유역 고구려유적 발굴보고」(정찬영,『유적발굴보고』13, 과학백과사전출판사,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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