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명원(明遠), 호는 소선(笑仙) · 만옹(慢翁). 증 참판 신세경(申世卿)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우참찬 신영(申瑛)이고, 아버지는 개성도사 신승서(申承緖)이며, 어머니는 은진송씨(恩津宋氏)로 송기수(宋麒壽)의 딸이며, 영의정 신흠(申欽)의 동생이다.
1597년(선조 30)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 여러 관직을 거쳐 1599년 평안도평사로 나갔다가, 1601년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 · 세자시강원사서(世子侍講院司書) 등을 지내고, 이듬해 예조 · 병조정랑을 거쳐 1603년 행용양위부사직 겸 춘추관기주관이 되어 임진왜란 때 소실된 실록의 재간에 참여하였다.
1605년 봉산군수로 나갔으며 광해군 때는 원주목사를 지냈다. 인조 초에는 충청도관찰사로서 공주산성을 수축하여 국난에 대비하였다. 그 뒤 형조참판을 역임하였고, 남원부사로 선정을 베풀었으며, 1628년(인조 6) 강화부유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