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평산(平山). 기묘명현 신상(申鏛)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별검(別檢) 신화국(申華國)이고, 아버지는 신잡(申磼)이며, 도순변사(都巡邊使) 신립(申砬)의 조카이다.
1588년(선조 21) 음보(蔭補)로 임관되었다. 이듬해 정여립(鄭汝立)의 옥사가 일어나자 그 일당인 선홍복(宣弘福)을 붙잡은 공로로 6품직에 발탁되어 1591년 제용감주부(濟用監主簿)가 되었다. 1593년 고산현감으로 도원수 권율(權慄)의 휘하에 종군하여 공을 세우고 같은 해 행주산성의 대첩보(大捷報)를 제일 먼저 왕에게 보고하였으며, 면천군수와 중화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1605년 재령군수로 재직 중 순변사 이일(李鎰)의 종사관(從事官) 윤섬(尹暹)을 사칭하며 도당을 모아 횡행하던 윤세침(尹世沈)을 붙잡아 중앙에 보고할 때 공명심으로 장계(狀啓)를 날조한 사실이 발각되어 삭직되고 문외출송(門外黜送: 사대문 밖으로 쫓겨남)의 처벌을 받았다.
뒤에 용서되어 1611년 (광해군 3) 수안군수에 등용되었으나, 1615년 양시우(楊時遇) · 김정익(金廷益) · 소문진(蘇文震) 등과 반역을 모의하여 능창군(綾昌君) 이전(李佺)을 추대하려 하였다는 무고로 장살(杖殺)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