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식화폐조례는 1892년(고종 29)에 은화(銀貨)를 본위화로 하고 동화(銅貨)를 보조화로 채택한 근대식 화폐제도이다. 당백전의 남발 등으로 화폐제도의 혼란이 초래되자 조선정부는 근대식 화폐제도를 도입하고자 하였다. 묄렌도르프가 담당한 서양식 근대화폐 주조가 실패한 후, 일본정부와 대판제동회사장의 자금 지원을 받아 신식화폐를 발행하기로 하였다. 일본에서 실시되고 있던 은본위제도를 채용하는 조례를 제정하였고, 각종 신식화폐를 주조하였다. 그러나 일본이 화폐발행에 필요한 자금을 양도하지 않아 화폐주조가 중지되었고, 조례도 폐지되었다.
흥선 대원군 집권기의 당백전(當百錢) 남발에 뒤이어, 청나라 동전의 대량 유입 및 1883년 이래의 당오전(當五錢) 발행 등으로 화폐제도의 혼란이 초래되자 조선은 새로운 근대식 화폐제도의 도입을 구상하게 되었다. 당시 전환국총(典圜局總)으로 있던 묄렌도르프(Mollendorff,P.G.V.)가 사업을 담당해, 1888년 한때 서양의 조폐 기술을 도입해 근대화폐를 주조하려고 시도하였다. 그러나 시험 주조 단계에 그치고 말았다.
1892년 전환국 방판(幇辦)에 임명된 안경수(安駉壽)는 전환국의 근대 조폐시설로써 소전(素錢)을 뽑아 각인(刻印)을 찍는 방법으로 전근대적인 화폐인 상평통보를 계속 주조할 생각을 가지고,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일본 대판(大阪)에 갔다. 그는 그 곳에서 대판제동회사장(大阪製銅會社長) 마쓰다(增田信之)를 만났는데, 마쓰다는 안경수에게 서양의 근대적 화폐제도를 도입할 것을 설득하였다.
안경수는 귀국해 근대식 화폐제도를 도입하고, 신식화폐를 발행할 것을 국왕에게 건의해 허락을 받았다. 그래서 조선정부는 일본정부와 마쓰다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아 신식화폐를 발행하기로 하고, 당시 일본에서 실시되고 있던 은본위제도를 채용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신식화폐조례」를 제정하였다.
「신식화폐조례」는 「신식전화통용제한법(新式錢貨通用制限法)」 및 벌칙 등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개략적 내용은 다음과 같다. 먼저 신식 푼양표준은 다음의 3개 항목으로 규정되어 있다.
① 신식 전화의 칭호는 양(兩)을 기표(起標)로 하고 양 이상 또한 이하는 숫자를 보태어 계산하되 제한이 없다.
② 계산은 모두 십진일위법(十進一位法)에 의거한다. 그러므로 양을 열로 나누면 1전이 되고, 1전이 열이면 1냥이 된다. 1로부터 위로는 십 · 백 · 천 · 만으로 모두 10으로 1위(位)씩 올라가는 법이다.
③ 푼 이하는 비록 통용 전화(錢貨)가 없다 하더라도 혹시 계산할 필요가 있으면, 이(釐) · 호(毫) · 사(絲) · 홀(忽)로서 미소(微小)한 계산에 당한다. 만(萬) 이상은 십만 · 백만 · 천만으로 대수(大數)의 계산에 사용하고 만만(萬萬)은 1억(億)으로 부른다.
「신식전화통용제한법」은 6개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① 1냥 은화는 원화(原貨), 즉 본위화로서 국내 일체의 공사지발(公社支發)에 사용하되 그 사용액수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② 2전5푼 보조 백동화(白銅貨)의 1차 지발액수는 1,000냥을 넘지 못한다.
③ 보조동화 5푼짜리의 1차 지발액수는 200냥을 넘지 못한다.
④ 보조 구전화(舊錢貨) 1푼짜리의 1차 지발액수는 100냥을 넘지 못한다. 보조화란 원화를 보조하여 통용하는 것으로 법으로 가치가 부여된 것이다.
⑤ 본품(本品) 5냥 은화는 해관세(海關稅), 혹은 외국인에게서 징수하는 여러가지 세금 및 조선인과 외국인이 통상수수(通商授受)할 때에 사용한다. 또한 국내의 여러가지 세금을 상납하는 것과 기타 공사 일체의 지출에 이를 사용해도 무방하다.
⑥ 제한 통용의 이치가 본래 화폐는 원본(原本) · 보조(補助)의 구별이 있다고 하는 데서 나온 것이므로 뭇 사람이 수수할 때에는 이 제한에 따르는 것이 옳지만 꼭 이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끝으로 벌칙규정은 다음과 같다. 전환국 이외의 다른 곳에서의 화폐주조를 불허하며, 위조 · 용훼(鎔燬) 혹은 고의로 신식 은 · 동화를 박손(剝損)하는 자가 있으면 모두 사주율(私鑄律)에 따라 처벌한다.
「신식화폐조례」를 당시 일본의 화폐제도와 비교해보면, 일본은 1원(圓) 은화를 본위로 하고 있는 데 비해, 조선에서는 5냥 · 1냥 은화를 본위로 하고 있다. 5냥 은화는 외국인 전용으로 하고, 1냥 은화는 국내인의 거래에 사용하게 하였다. 그리고 5냥 은화는 일본의 1원, 1냥 은화는 20전, 2전 5푼 백동화는 5전, 5푼 적동화는 1전과 동일한 가치를 가지는 것이었고, 1푼 황동화는 상평통보 2푼에 해당되었다.
조선정부는 이와 같은 조례에 의거해, 23만여 환(圜)의 액수에 달하는 각종 신식 화폐를 주조하였다. 이때 주조된 화폐는 5냥 은화, 1냥 은화, 2전 5푼 백동화, 5푼 적동화, 1푼 황동화 등 5종이었다. 그러나 화폐의 주조는, 이듬해인 1893년 1월 마쓰다가 약속을 어기고 화폐발행에 필요한 지금(地金)의 양도를 거절했기 때문에 중지되었으며, 「신식화폐조례」마저 폐지되었다. 이로써 결국 신식화폐의 주조 · 통용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1894년 「신식화폐발행장정(新式貨幣發行章程)」이 공포 · 시행될 때까지 기다려야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