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사직(士直). 고조부는 신숙주(申 叔舟)이며, 도관찰사 신면(申㴐)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좌의정 신용개(申用漑)이고, 아버지는 장례원판결사 신한(申瀚)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첨지중추부사 임맹영(任孟瑛)의 딸이다. 부인은 우의정 이명구(李明龜)의 딸이다.
음사로 1534년(중종 29) 성현찰방(省峴察訪)에 임명되면서 관직생활을 시작하였다. 이후 감찰·부여현령·원주통판(原州通判)·군자감판관(軍資監判官)을 거쳐, 1558년에 선공감첨정(繕工監僉正)이 되었다가 곧 가평 군수로 전임되었다.
부임한 지 며칠 뒤 한밤중에 관아에서 불이 났는데, 창황중에도 부조(父祖)의 신주를 꺼내려고 열화 같은 불속으로 뛰어 들어갔다가 미처 나오지 못하여 사망하였다. 이제까지 없었던 지극한 효행으로 인정되어 정표(旌表)되었고, 자손을 특별히 관직에 임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