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1708년(숙종 34) 관찰사 이선부(李善溥)가 세운 비석으로, 인조가 이괄(李适)의 난을 피해 공산성(公山城)에 머물렀던 10일 동안의 행적과 왕의 주필지지(駐畢之地 : 왕이 잠시 머문 곳)로서의 공산성에 대한 찬양, 그리고 성의 수축에 관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비는 비석을 받치는 귀부(龜趺)와 비신, 그리고 꼭대기에 큰 보주(寶珠)를 올려놓은 옥개석 모양의 비개(碑蓋)로 구성되었는데, 특히 귀부는 조선시대 대표적인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귀부의 높이는 0.75m이며, 비신의 높이는 1.76m, 너비 0.8m, 두께 0.6m로서 전체 높이는 3.65m이다. 비문은 인조 때 영의정을 지낸 신흠(申欽)이 지은 것이며, 글씨는 숙종 때 영의정을 지낸 남구만(南九萬)이 쓴 것이다. 현재 정면 3칸|측면 1칸에 맞배지붕으로 된 비각을 세워 보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