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7년(충렬왕 33년) 작. 세로 22.4㎝, 가로 13㎝.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나무판의 앞·뒷면에 흑칠을 한 뒤 금니(金泥)로 아미타불과 8대보살 및 지장보살(地藏菩薩), 담무갈보살예배도(曇無竭菩薩禮拜圖) 등을 그린 것이다. 앞·뒷면 모두 금강저(金剛杵 : 악마를 깨뜨리는 무기) 문양으로 테두리를 장식하고 그 안에 여러 불·보살을 배치하였다.
앞면은 화면을 크게 이등분하여 윗부분에는 결가부좌(結跏趺坐)의 아미타불을 배치하고 아래에는 한 줄에 4인씩 8대보살을 두 줄로 배치한 아미타팔대보살도 혹은 아미타구존도의 형식을 보여 주고 있다.
본존인 아미타불은 화염으로 둘러싸인 원형 두광(圓形頭光)과 신광(身光)을 배경으로 하여 중품중생인(中品中生印)을 짓고 연꽃대좌 위에 결가부좌하였다.
광배(光背) 내부를 온통 방사형의 구불구불한 선으로 채우고 있어 화려한 느낌을 준다. 갸름한 얼굴이라든가 단정한 자세, 균형 잡힌 신체 표현 등 전체적으로 귀족적인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아미타불이 앉아 있는 좌우 공간에는 구름과 꽃무늬를 가득 채워놓고 있어 아미타부처가 상주(常住)하는 서방 극락세계를 연상하게 한다.
아미타불의 무릎 아래쪽에 좌우 4인씩 서로 대칭적으로 묘사된 8인의 보살은 지장보살을 제외하고는 외형상 별 차이가 없다.
하지만 지물(持物)에 의하여 볼 때 아랫줄의 중앙이 관음보살(觀音菩薩, 向右, 버들가지)과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 向左, 經函), 그 옆이 문수보살(文殊菩薩, 向右)과 보현보살(普賢菩薩, 向左) 그리고 윗줄의 중앙이 금강장보살(金剛藏菩薩, 向右)과 제장애보살(除障碍菩薩, 向左), 그 좌우가 미륵보살(彌勒菩薩, 向右)과 지장보살(向左)이다. 보살들의 명칭은 ≪아미타팔대보살만다라경 阿彌陀八大菩薩曼茶羅經≫에서 기원한 것으로 생각된다.
뒷면 역시 금강저 문양으로 테를 두른 뒤 화면을 상하 2단으로 구분하여 담무갈보살예배도와 지장보살도를 배치하였다. 화면 상단의 오른쪽에는 날카롭게 솟은 암산(巖山)의 봉우리가 늘어서 있다.
그 아래 평평한 바위 위에는 한 인물이 무릎을 꿇고 예배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그 옆에 ‘太祖(태조)’라고 쓰여져 있다.
이 인물이 향하여 예배하고 있는 쪽, 즉 화면의 왼쪽 상단에는 여러 권속들을 거느린 보살형의 인물이 온몸에서 빛을 발하며 서 있다. 이 장면은 고려 태조가 금강산 입구의 배첩(拜帖)에서 방광(放光)하는 담무갈보살에게 예배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는 전설을 도상화한 그림으로 추정된다.
아랫부분은 중앙에 지장보살이 구름 문양을 배경으로 바위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을 표현하였다. 구불거리는 선묘(線描 : 선으로만 그림)에 의하여 화면 전체가 생동감을 느끼게 한다. 지장보살은 오른손은 가슴 높이로 들어 투명한 보주(寶珠)를 들고 왼손은 왼쪽 무릎에 대었다. 왼쪽 발은 내려 연꽃대좌를 밟고 있는 반가좌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지장보살의 얼굴은 아미타불과 마찬가지로 갸름한 편이다. 굴곡이 심한 이마의 모습은 우리 나라, 특히 고려시대 지장보살의 특징적인 표현이다. 통견의 불의(佛衣)는 능숙한 금선묘(金線描)로 표현되었다. 구불거리는 옷자락이 온몸을 감싸며 흘러내리고 있다.
지장보살의 오른쪽 아래에는 승려와 속인 등 2인이 지장보살을 향하여 예배드리고 있다. 왼쪽에는 ‘노영’이라고 적힌 인물의 절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어 발원자 내지 시주자, 화사(畫師) 등이 지장보살에게 예배하는 장면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2단 구도적 화면 구성, 구불거리는 선묘, 찬란한 금니의 능숙한 필치 등 고려시대 후반기 불화의 양식적 특징을 잘 보여 주는 작품이다. 뒷면의 오른쪽 아래에 “大德十一年丁未八月日謹畫魯英洞願福得付金漆書(대덕11년정미8월일근화노영동원복득부금칠서)”라는 화기가 적혀 있어 1307년(충렬왕 33년)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