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몽항쟁이 끝난 직후 동계(東界)의 강릉도(江陵道)에 처음 설치되었다. 즉 1258년(고종 45) 몽고가 영흥을 중심으로 한 철령(鐵嶺) 이북에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를 설치하면서 더이상 이곳에 병마사(兵馬使)를 파견할 수 없게 되자, 고려는 쌍성총관부 밖에 잔존해 있는 동계 지역의 통치를 위해 새로운 지방관으로 안집사를 파견하였다.
그러다가 1298년(충렬왕 24) 충선왕이 즉위하여 이를 혁파하고 교주도안렴사(交州道按廉使)로 하여금 겸임하게 하였다. 한편, 충렬왕 29년에 서북면안집사가 된 김겸(金堅)의 사례로 미루어 보아 몽고로부터 동녕부(東寧府)가 환부된 충렬왕 16년 이후에는 서북면에도 강릉도의 예에 따라 안집사가 파견되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그리고 원종 때 삼척에 은거해 있던 이승휴(李承休)에게 출사를 권한 안집사 이심(李深)이 정4품관인 병부(兵部)의 시랑(侍郞)을 지낸 사실을 고려할 때 안집사 또한 5도의 안찰사(按察使)와 마찬가지로 주로 4품 내지 6품의 관원들이 임명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