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시 ()

대동여지도 중 경상남도 양산, 김해, 부산 부분
대동여지도 중 경상남도 양산, 김해, 부산 부분
인문지리
지명/행정지명ˑ마을
경상남도 동남부에 위치한 시.
정의
경상남도 동남부에 위치한 시.
개관

동쪽과 남쪽은 부산광역시, 서쪽은 밀양시와 김해시, 북쪽은 울산광역시와 접하고 있다. 동경 128°01′∼129°18′, 북위 35°′∼35°32′에 위치한다. 면적은 485.45㎢이고, 인구는 35만 3,792명(2023년 기준)이다. 행정구역으로는 1개 읍, 4개 면, 8개 행정동(23개 법정동), 203개 행정리(37개 법정리)가 있다. 시청은 경상남도 양산시 남부동에 있다.

자연환경

지세상 특징은 태백산맥의 여맥이 남쪽으로 뻗어 내리면서 시의 북쪽인 밀양시 · 울산광역시의 산지부분을 형성함은 물론, 그 영향이 시의 남쪽인 부산의 북부까지 지속되는 관계상, 고봉준령이 상당한 범위에 걸쳐 있다. 이들 산지부의 곡저부에는 곳곳에 분지형 저평지및 하천유역의 침식평야 지구가 전개되고 있다.

북서부에서 남쪽으로 낙동강이 남류하며 이들 산지부에서 흘러 내리는 당곡천 · 염포천 · 원동천 · 상림천 · 양산천 등을 이루면서 모두 낙동강에 합류되고 있다. 양산천지구에서 북동쪽으로 경주의 모화지구간에는 양산단층선(梁山斷層線)이 통과하고 있어서 지형상의 특이지구를 형성하고 있다.

북부의 하북 · 웅상에는 취서산(聚西山, 1059m) · 시살등(981m) · 정족산(鼎足山, 700m) · 천성산(天聖山, 812m) · 원효산(元曉山, 922m) · 대운산(大雲山, 742m), 서부의 원동 · 물금에는 염수봉(鹽水峰, 816m) · 천태산(天台山, 631m) · 토곡산(土谷山, 855m) · 오봉산(五峰山, 450m)이, 그리고 부산의 접경지구인 남부의 동면에는 장군봉(將軍峰, 750m) · 금정산(金井山, 801m) 등이 솟아 있다.

한편 동부쪽에는 북동부에는 회야강이 대운 및 원효산지에서 발원해 북류해 울산만쪽으로 흘러가며, 또한 원효산지 및 철마산지간을 수영강이 발원해 남류하다가 부산의 수영만으로 흘러든다.

기후는 남해안에 근접함으로 난대성의 남해안 기후에 속하나 내륙의 산간지구는 한서의 차가 큰 편이다. 연평균기온은 15℃이며, 1월 평균기온 4.8℃, 8월 평균기온 27.5℃, 연강수량은 1,135.8㎜이다.(2007년 기준)

지질은 북북동 남남서 주향의 양산 단층선을 경계로 하여 서부는 경상계 신라통의 상부층의 안산암류와 이르러 다시 관입한 화강암유의 화성암으로 되어 있으며, 동부는 혈암 · 사암 · 니회암 · 섬록색 혈암 등의 덮인 경상계 신라통의 울산층으로 되어 있다. 식생은 온대의 특성을 보여 편백 · 리기다소나무 · 오동나무 등이 자라고 있다.

역사

선사시대 인간주거의 유력한 증거가 되는 여러 패총과 유적들이 여러 곳에 산재하고 있어 신석기시대부터 사람들이 터전을 잡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양산은 지리적으로 신라 세력의 중심지였던 경주와 금관가야의 중심이었던 김해의 사이에 위치하고 또, 낙동강 하구 물금에서 언양에 이르는 긴 골짜기는 낙동강과 경주를 연결하는 긴 통로이며, 『삼국사기』에도 신라와 가야가 전투를 벌인 기사가 여러 차례 보이는 것으로 보아서 두 세력이 충돌하다 일찍부터 신라의 세력권으로 편입된 지역으로 보인다. 또한, 665년(문무왕 5)에 신라가 상주(上州: 지금의 尙州) · 하주(下州: 지금의 昌寧)를 개편해 양산지방에 삽량주(揷良州)를 신설한 것으로 보아 삼한시대의 양산은 한반도 남동지역에 존재하고 있던 변진 24국 중에서 불사국(不斯國)과 호로국(戶路國)에 속했음을 알 수 있다.

646년(선덕여왕 15)에 자장율사가 이 지방에 통도사를 창건했으며, 문무왕이 상기한 대로 상주와 하주를 분할해 삽량주를 신설했고, 687년(신문왕 7)에 성을 쌓았다. 또한, 757년(경덕왕 16)에 주명을 양주(良州)로 고치고 헌양현(巘陽縣: 지금의 언양)을 영현으로 하였다. 삼국시대 이전 유적으로는 양산패총, 하북면 신평 청동기유적, 다방동 패총, 하북면 순지리, 웅상 지역과 명곡리 취락지와 부부총 유적이 있다.

983년(성종 2)에 전국에 12목을 설치하고, 또 995년 7월에 전국을 10도로 나누었는데, 이때 양주군은 영동도(嶺東道) 경주목의 소속이었다. 940년(태조 23)에 양주(良州)는 양주(梁州)로 개칭되었고, 1018년(현종 9)에 방어사를 두고 기장현과 헌양현을 울주로 이속하고, 동평현(東平縣: 지금의 부산)을 영현으로 삼았다. 그러나, 원지배하에 들어와 몽고의 간섭으로 관제를 정비하면서 양주는 밀성군(密城郡: 지금의 밀양시)에 병합되었다가, 1304년(충렬왕 30)에 다시 복구되었다. 속현으로는 동평현, 기장현이 있었으며, 별호로는 선춘(宣春), 순정(順正) 등의 명칭이 있었다.

양주는 1413년에 지방행정 개편 때에 양산군으로 개칭되었으며, 1405년에 ,동래현으로 이속했다가 1409년에 동래현으로 부터 양주에 속하게 했던 동평현을 1428년(세종 10)에 다시 동래현으로 이속하였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세종 때의 호구수는 양산군이 425호 937명, 동평현이 108호 342명, 기장현이 174호 397명이었다.

1592년(선조 2)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1599년에 끝이 났으나, 이로 인해 군이 황폐해져 동래부에 폐합되었다가 1603년에 복구되었으며, 기장현 역시 1599년동래부에 폐합되었다가 1617년(광해군 9) 현을 복구하였다. 1771년(영조 47) 양산군의 호구수는 2,079호 1만 2178명이었고 1759년 기장현의 호구수는 2,687호 1만 630명이었다.

1895년(고종 32)년에 기장현을 군으로 개편하고, 1897년 전국을 13도로 하고 양산군을 양산면 · 동면 · 물금면 · 원동면 · 상북면 · 하북면 · 구포면 · 대저면의 8개면으로 하였다. 1906년에는 외남면과 웅상면을 울주군에서 편입하고 구포면을 동래군으로, 대저면을 김해군으로 이관하였으며, 1910년외남면을 다시 울주군으로 이속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기장군을 동래군으로 통합하였다. 1919년 양산의 3 · 1운동은 엄주태(嚴柱泰) 등 청년층이 주도해 3월 27일 궐기했으며 계속해 일본상품불매 · 상해임정 자금지원운동 등으로 번져 나갔다.

광복 이후 경제개발 정책의 와중에서 급속히 발전한 양산군은 1970년 군의 중앙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었으며, 1973년 7월 1일동래군을 흡수하였다. 1974년 10월 26일에는 원동면 이천출장소를 설치했으며, 1979년 4월 7일양산면이 1980년 12월 1일기장면이 각각 읍으로 승격하였다.

또한 1983년 2월 15일 서생면으로 울주군으로 이속하고, 1985년 10월 1일 장안면이 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86년 11월 1일 동부출장소를 설치해 기장면 · 장안면 · 일광면 · 정관면 · 철마면을 관할하게 하고, 1991년 11월 20일 웅상면을 읍으로 승격, 1995년 3월 1일 동부 등 5개 읍 · 면이 부산광역시에 편입되었다. 1996년 3월 1일 양산군이 양산시로 승격되고 양산읍이 중앙동, 삼성동, 강서동으로 분동하였다. 물금면은 읍으로 승격되었다. 1998년 4월 1일 덕계출장소가, 2004년 1월 3일 웅상민원출장소가 각각 설치되었다. 2007년 4월 웅상읍이 서창동, 소주동, 평산동, 덕계동으로 분동되었다.

유물 · 유적

불교문화재로는 하북면 지산리의 통도사 안양암 북극전(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85년 지정) · 통도사천왕문(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85년 지정) · 통도사 석등(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85년 지정) · 통도사 봉발탑(보물, 1968년 지정)과 만세루(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81년 지정) · 명부전(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81년 지정) · 영산전(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82년 지정) · 용화전(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82년 지정) · 응진전(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81년 지정) · 통도사대광명전(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74년 지정) · 통도사 불이문(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85년 지정) · 통도사 영산전 팔상도(보물, 1990년 지정) · 통도사 대광명전 삼신불도(보물, 1990년 지정) · 통도사 청동 은입사 향완(보물, 1963년 지정) · 통도사 금동천문도(경상남도 유형문화재, 2003년 지정) · 청동시루(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79년 지정) · 금니법화경(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79년 지정) · 금니금강경(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79년 지정) · 통도사경판(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79년 지정) · 청동은입사향완(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79년 지정) · 청동여래좌상 및 청동사리탑(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79년 지정) · 청동여래입상(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79년 지정) · 동종(보물, 2000년 지정) · 감지금니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46(보물, 1984년 지정) · 문수사리보살최상승무생계경(보물, 1982년 지정) 등이 있다.

그리고 백록리에는 통도사 국장생 석표(보물, 1963년 지정)가 통도사의 경내를 표시한 것이다. 소주동에 양산 미타암 석조아미타여래입상(보물, 1989년 지정)은 석굴 속에 있는데 이 석굴은 삼국유사의 포천산석굴로 비정되는 것이다. 동면의 양산 가산리 마애여래입상(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72년 지정), 물금읍 물금리에 용화사석조여래좌상(보물, 1968년 지정)는 통일신라 중기에서 말기로 넘어가는 형식을 보인다.

그리고 하북면 용연리의 노전암(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82년 지정) · 묘법연화경 권1~3(보물, 1993년 지정) ·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36(국보, 1993년 지정)이 있으며, 호계동에 양산 호계리 마애여래좌상(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79년 지정), 원동면 영포리 신흥사경내의 양산 신흥사 대광전(보물, 1992년 지정)에 있는 대광전 벽화는 17세기와 18세기에 그려진 것이며, 주남동에 안적암(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79년 지정) 등이 있다.

교동에 양산향교(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82년 지정), 우불산신사(경상남도 문화재자료, 1991년 지정), 상북면 소토리에 소로서원 · 소계서원, 물금읍 가촌리에 송담서원 등이 있다. 산막동에 칠현사(七賢祠)가 있다.

신기동의 양산신기리지석묘(경상남도 기념물, 1990년 지정)는 기반식이다. 삼국시대 유적으로 북정리고분군(사적, 1963년 지정) · 신기리고분군(사적, 1963년 지정)이 있다. 중부동고분군(사적, 1963년 지정)은 동산의 서사면 일대에 있는데 5∼6세기대에 조성되었고, 웅상 지역의 명곡리고분군은 고분 북서쪽에 승석문, 격자문이 타날된 토기가 채집되는 4∼5세기의 유적이다.

구석기시대의 유물로는 북정동에서 사암제 타제 양면핵석기가 발견되었고, 청동기시대의 유적으로 다방동에서 무문토기 저부편이 발견되었다. 조개더미로는 물금읍 증산리 상리패총, 남부동패총이 있다.

하북면 삼수리에는 양산이씨 종가 고문서(보물, 1989년 지정)는 모두 16점의 조선 초기의 문서들이다.

신라 선덕여왕 15년 자장율사가 창건한 이래 통도사 앞 마당에서 계속되어진 양산사찰학춤은 고결한 품위와 우아한 자태를 지닌 학의 24개에 이르는 동작을 본뜬 춤으로 전통의 맥으로 이어온 어산 법패, 여래의 공덕을 찬미하는 춤과 노래의 한 종류이다. 웅상농청놀이는 년 중 농사의 과정을 희극적으로 풀이하여 한 해의 고달픔을 순간순간 잊으려는 놀이 행사이다.

산성으로는 북부동 산성(사적, 1963년 지정), 신기동의 신기리 산성(사적, 1963년 지정), 물금읍의 물금증산성, 상북면 석계리의 원적산봉수대(경상남도 기념물, 1992년 지정) 등이 있다.

중부동의 효자리비(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76년 지정)는 박창과 이공미의 효행을 기록한 비이다. 그리고 동면의 양산 법기리 요지(사적, 1963년 지정), 상북면의 양산석계리의 이팝나무(천연기념물, 1976년 지정), 신전리의 이팝나무(천연기념물, 1971년 지정)가 있다.

교육 · 문화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는 교동의 양산향교는 1406년(태종 6)에 창건된 것이며, 서원은 상북면 소토리에 1672년(현종 13)에 설립된 율리정사(栗里精舍)가 있고 1783년(정조 7)에 건립되고 1868년에 훼철되고 복원한 상북면 소토리에 소계서원(蘇溪書院)과 1836년(헌종 2)에 건립되고 1868년에 훼철되어 복원된 상북면 소토리에 소로서원(小魯書院), 1836년물금읍 가촌리에 설립된 송담서원(松潭書院)이 등이 있다.

근대 교육기관으로는 1909년 양산향교 내에 사립 원명학교가 설립되어 뒤에 양산초등학교로 이어졌으며, 이어 각 면마다 학교가 설립되었고, 1939년 지금의 양산중학교가 개교해 중등교육이 실시되었으며, 1990년 양산전문대학(지금의 동원과학기술대학교)이 설립되어 고등교육기관이 들어섰다.

2015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36개교, 중학교 14개교, 고등학교 11개교가 있으며, 동원과학기술대학교와 영산대학교, 그리고 부산대학교 양산캠퍼스가 있다.

또한 양산삽량문화축전추진위원회에서는 매년 이 지방의 문화축전인 양산삽량문화축전을 개최하고 있다. 1986~2004년까지 삽량문화제라는 명칭으로 개최하였고 2006년부터 양산삽량문화축전으로 명칭을 변경하여 지속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민속

대표적 민속놀이로는 윷놀이 · 널뛰기 · 연날리기 · 지신밟기 · 줄다리기 · 씨름 · 그네뛰기 · 장치기 등이 있다. 지신밟기는 정월 보름을 전후해 농민들이 다양한 복색으로 차리고 농악을 울리며 지신을 밟아 주는 놀이이다. 상쇠 1명, 종쇠 2명 등 총 26명으로 이루어진 농악대가 농악을 울리며 성황당부터 지신밟기를 한 뒤 마을로 들어가 각 집을 돌면서 마당풀이 · 성주풀이 · 조왕풀이 등의 사설을 하며 집안의 평안과 번영을 기원한다.

줄다리기는 정월 보름 · 2월 풍신제 · 5월 단오 · 8월 한가위 때 온 마을사람들이 두 편으로 나누어 힘을 겨루는 놀이이다. 예전에는 집집마다에서 모은 짚으로 1㎞가 넘는 암줄과 수줄을 만들어 지금의 남부동 상설시장에서 북부동까지 줄을 늘어놓고 풍물을 울리며 즐긴 마을의 큰 행사였으나 현재는 그 면모를 찾아볼 수 없다.

1977년의 동제조사에 의하면 당산신을 모시는 당산제가 압도적으로 많이 나타났다. 제일은 상원(上元)이 대부분이고 3월 3일과 9월 9일도 이따금 있다. 해변가의 별신굿은 내당 열세 거리와 외당 열아홉 거리로 구성되며, 총 15∼20명 정도가 진행하는 큰 행사로서, 각 거리마다 무인(先唱者) 한 사람과 무부(巫夫 · 바라지) 3, 4명이 어우러져 치른다.

설화 · 민요

이 고장에는 통도사 · 가야진사 등의 유래를 밝힌 연기전설(緣起傳說)과 원효 · 의상에 대한 인물전설 등 많은 설화가 전해오고 있다. 통도사 창건에 대한 설화는 『삼국유사』에도 소개되어 널리 알려져 있지만 통도사대웅전 뒤에 있는 구룡신지(九龍神池) 또한 자장과 얽힌 유래담을 가지고 있다. 자장이 당나라에서 돌아와 통도사를 지으려 할 때 연못가에 자리를 잡게 되었는데, 그 연못에는 아홉 마리의 용이 살고 있었다. 자장은 독경을 외워 용을 물리치고자 했으나 용들이 불응하므로 법력(法力)으로 용들과 격투를 벌이게 되었다. 이때 세 마리의 용은 달아나다가 바위에 부딪혀 피를 토하고 죽었으므로 이 바위를 용혈암(龍血巖)이라 부르게 되었고, 다섯 마리는 영취산 골짜기 아래로 떨어져 죽었으므로 이 곳을 오룡곡(五龍谷)이라 불렀으며, 나머지 한 마리는 연못에 남아 절터를 지키게 하고 그 연못을 구룡신지라 하였다는 것이다.

원동면의 낙동강 나루에 있는 가야진사도 용과 전령에 얽힌 유래담을 가지고 있다. 신라 때 양주의 전령 하나가 문서를 가지고 길을 가다 이 곳 주막에 묵게 되었다. 그날 밤 전령의 꿈에 용이 나타나더니 자기 남편이 첩만 가까이 하니 첩을 죽여 달라고 부탁하므로 전령은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을 하였다. 다음날 전령은 꿈에서 용이 시킨대로 바위틈에 숨어 용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두 마리의 용이 나타나자 다급해진 전령은 그 중 하나를 무심결에 내리쳤는데 그만 수용을 죽이고 만 것이었다. 그러자 화가 난 본처 용이 나타나 전령을 끌고 용궁으로 사라졌고, 그 뒤부터 마을에 재앙이 끊이지 않았으므로 마을사람들은 사당을 짓고 해마다 세 용에게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원효에 관한 전설로는 하북면 천성산의 「원효암전설」이 유명하다. 하루는 원효가 암자에서 중국땅을 바라보니 산둥성 법운사(法雲寺)에서 1,000명의 신도가 불공을 드리고 있는데 법교(法敎)를 잘못한 죄로 절이 무너져 몰살하게 될 찰나에 있는 것이었다. 이에 원효가 해동원효라고 쓴 판자를 그곳으로 던져 신도들을 절밖으로 나오게 하여 화를 면하게 하였다. 그러자 신도들이 원효에게 와서 제자가 되기를 청하므로 원효는 산신령의 교시로 신도들을 이끌고 지금의 내원암에 이르니 엄동에도 칡꽃이 피어 있었다. 원효는 여기에 자리를 잡고 절을 지었는데, 이 절이 바로 원효암이라 한다.

이 밖에도 「산막리(山幕里)와 반고굴(磻高窟)전설」 · 「혁목암전설(赫木庵傳說)」 등 원효에 얽힌 이야기와 기타 「박초이야기」 · 「매바위」 · 「심동대굴」 · 「삼수리(三帥里)와 삼장수(三將帥)」 · 「오의정(烏義亭)」 · 「철마(鐵馬)이야기」 등이 전해 온다.

이 고장에 전하는 민요의 주축을 이루는 것은 「모심기노래」를 중심으로 한 농요와 멸치잡이의 어로요(漁撈謠)이다. 「모심기노래」는 “비 묻었네, 비 묻었네/ 양산 땅에 비 묻었네/ 그 비가요, 비 아니라 억만군사의 눈물일세.”와 같이 4음보의 전후절이 대구 형식으로 되어 있어 여러 가지 내용의 사설을 이어나가는 식이다. 이 밖에 「모찌는 노래」나 「밭매기노래」도 4음보로 계속 이어지는 것이 「모심기노래」와 유사하게 전승되고 있다.

「멸치잡이 후릿노래」는 ‘놓는 소리’, ‘망께소리’, ‘가래소리’ 등으로 구분되는데, 앞의 둘은 율동을 위한 소리라고 한다면 뒤의 가래소리는 풍어를 비는 노래라 할 수 있다.‘놓는 소리’는 그물을 바다에 놓으면서 부르는 소리로 10여명의 어부가 두 패로 나뉘어서 부르는 교환창이다. ‘망께소리’는 사리소리라고도 하는데 그물에 고기가 다 들어간 뒤 망께, 즉 그물의 줄을 잡아당기는 얼레로 줄을 당기면서 부르는 소리로, 역시 교환창이다. ‘가래소리’는 끌어올린 고기포대에서 멸치를 가래로써 풀어내릴 때 부르는 소리이다. 먼저 “돌려라 돌려라 도도리를 돌려라/(후렴) 에헤라 차 감아보자.”라는 사설로 시작해 자신들의 신세타령을 한바탕 늘어놓은 뒤 모두 힘을 다해 많은 고기를 들어올리자는 내용으로 맺는다.

이 고장에는 또 「삼장수민요(三將帥民謠)」라는 노래가 전하는데 이는 고려 말 공민왕 때 순찰사였던 이전생(李全生)이 이 곳에 이르렀을 때 여기가 당대에 3장수가 태어날 명당임을 알고 이주해 3남 2녀를 얻었는데 후일 아들 삼 형제가 모두 무과에 급제해 판중추(종 1품)까지 지낸 명장수가 되었다는 옛일을 기리는 노래이다. “날개가 달리신 용마를 타고, 갑옷을 입으신 장수가 됐네.” 등의 사설에 후렴 “방아로구나 방아로구나, 양산아 고을에 삼장수 났네.”로 불린다.

또한 이 밖에 정월 대보름을 전후로 하여 지신밟기를 하면서 부르는 노래가 전승되는데, 이는 농민들이 벼슬아치 · 포수 · 농악대 차림으로 집집을 찾아다니며 지신(地神)을 위로하는 농악으로서, 도시 탈춤의 전형태인 농촌 탈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산업 · 교통

농경지 면적은 54.10㎢이며, 잔여지구는 임야 및 기타지역으로 되어 있다. 경지면적은 논이 40.80㎢, 밭이 13.36㎢로서 각각의 점유비는 논이 75.4%, 밭이 24.6%로 되어, 논이 밭보다 약 2배 가량 높게 경작되고 있다. 시의 농가 호수는 3,384호, 농가 인구는 1만 1168명으로서 시 인구에 대한 농가 인구율은 4.7%에 달한다.

주요 작물로는 주곡인 쌀을 비롯해 보리 · 콩 · 잡곡 등이 재배되며 참깨 · 들깨 · 피마자 · 해바라기 등의 특용작물과 고등채소 등의 원예작물이 경작되고 있다. 대도시 근교지대의 이점을 활용해 기업적 목적의 축산업도 활발해 우유의 채집을 목적으로 한 젖소사육과 양계도 특히 활발한 편인데, 주로 상북 · 웅상지구에 축산업이 현저히 나타난다. 양산은 산지가 많아 경지율이 12.7%로 낮으며 농업 인구는 9.5%이다. 부산의 교외 지역으로 젖소와 닭 사육이 경상남도 제일이다.

2008년 현재 총 사업체수는 1만 5635개 업체이고, 총 종사자수는 8만 8353명이다. 농수산업 관계의 서비스업은 5개 업소에 73명이 고용되어 있다. 제2차 산업에 속하는 광공업을 보면, 시 관내에 11개의 광구가 소재하고 있으며, 4개 업소가 광업 관계 활동을 통해 87명의 종업원을 고용하고 있다. 제조업은 2,639개 업소에 4만 1018명이 고용되어 있다. 양산은 지방 공업단지 개발이 완료되어 부족한 부산의 공업 용지 공급에 큰 역할을 하고 있으며, 경상남도 전체 광공업 취업자의 11.6%를 차지하고 창원 다음으로 제조업 취업자가 많다.

이것은 경상남도 전체에 대해 사업체수 및 종업원이 각각 7.2%, 12.0%의 비중을 점해 상대적으로 본 시의 고용이 인구에 비해 공업의 의존도가 대단히 큰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본시와 인접한 대도시 부산시의 용지난과 고지가 등에 비추어 상대적으로 유리한 입지여건을 지닌 본 시가 이전업체를 견인하고 새로운 공장시설을 유치케 된 것을 반영한 것이며, 신흥 공업도시에로의 새로운 부상과 발전도 대도시권 교외지역의 공통적 특성과 일치된다.

제3차 산업에 속하는 상업 및 서비스부문의 특성을 보면 총 사업체수 1만 2988개 업체가 있다. 여기서 제3차 산업의 구조는 활발한 공업기능을 지원하는 생산 · 유통 · 금융기능이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있음은 물론, 시민생활의 필요에 부응하는 소비기능도 적절히 갖추어져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상업활동은 여러 개의 정기시장이 있었으나 현재는 서창동 서창장과 상북면 석계장이 4 · 9일에, 덕계동 덕계장과 하북면 신평장이 3 · 8일에, 물금읍 물금장이 5 · 10일에 열리는데 주요 거래품목은 어류인 갈치 · 고등어 · 게와 밤 · 감 등이 거래된다. 그러나 주요 생활필수품은 가까운 부산의 대형백화점을 이용하기도 한다.

교통은 7번 · 35번국도가 울주군과 부산시를 남북으로 연결되고, 고속도로는 울주∼부산과 연결, 철도의 경부선이 남서쪽의 낙동강 변을 따라 부산과 연결되는 등 대체로 편리한 편이다. 양산시를 통과하는 고속국도 노선은 고속국도 1호선(경부고속도로) 고속국도 19 · 2호선(양산 · 구포간 고속도로)으로 양산시내 통과 총 노선연장은 31.9㎞이며 포장율은 100%이다. 양산시내 통과 국도는 국도 7호선, 국도 35호선 2개 노선이며, 지방도는 총 6개 노선으로 연장은 140㎞이다. 현재 국가지원 지방도 60호선(김해 · 좌천)와 김해 · 원동 · 상북(울산)을 연결하는 국가지원 지방도 69호선이 계획되어 있다. 군도는 도시 내 주요지점과 농촌지역을 연결하며 총 연장 69.9㎞ 중 27.1㎞인 38.8%가 포장되어 있다. 경부선 철도 1개 노선이 운행 중에 있으며 경부고속철도 1개 노선이 계획 중에 있다. 부산지하철 2호선의 호포 차량기지가 있으며 양산역까지 운행되고 있다.

관광

양산지방은 수려한 산천과 고찰이 많기로 이름난 고장이다. 양산의 영산인 취서산의 깊은 계곡에 자리잡은 통도사는 합천의 해인사, 전라남도 순천의 송광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사찰 중의 하나로 대웅전을 비롯해 보물급의 수많은 불교문화재가 산재하는 국내 굴지의 관광명소이다. 통도사에 이르는 약 1.5㎞의 노송 숲은 터널을 이루어 새소리, 맑은 물소리와 더불어 선경을 방불하게 하는 가경으로 사시사철 관광객의 발길이 끓이지 않는다.

천성산은 산천이 수려하고 기암괴석이 솟아 있어 제2의 금강산이라고 하는데, 계곡에는 통도사의 말사이자 여승들의 수도장인 내원사가 있어 시인 묵객과 탐승객이 줄지어 찾는다. 이 곳에서 남서쪽으로 약 4㎞ 떨어진 원효산 계곡의 홍룡폭포도 이 고장이 자랑하는 절경 중의 하나이다.

서창동 삼호리의 서창장은 4 · 9일, 덕계리의 덕계장은 3 · 8일에 장이 선다. 그리고 상북면 석계리의 석계장은 장날이 4일과 9일이고, 하북면 순지리의 신평장은 3일과 8일에 장이 선다.

신라 눌지왕 2년(418)부터 경덕왕 16년(757)까지 약 340여 년간 불려온 양산의 옛 이름를 딴 삽량문화제는 이 고장의 뛰어난 문화유산을 이어받아 계승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문화예술축제이다. 가야진용신제는 원동면 용당리에 있는 ‘가야진사’의 제례를 바탕으로 형상화한 행사이다. 통도사 개산조 자장율사의 제사일인 음력 9월 9일을 전후하여 열리고는 개산대제는 자장율사에 대한 추모와 통도사 창건을 축하하는 행사로서 개산대제 법요식과 자장율사 가사 친견, 유치원 재롱잔치, 기념 합창제등 다채로운 문화행사가 열린다.

2002년에 준공한 남부동의 양산문화예술회관은 대공연장 및 소공연장과 전시실, 야외공연장, 연습실 등이 있으며 명실공히 양산문화의 대표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하북면 지산리의 통도사성보박물관은 사찰전래의 문화재를 보존 전시하고 이에 대한 체계적 연구를 통하여 일반 대중의 불교문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도모하기 위한 취지에서 건립되어 1999년에 개관하였다. 국보 1점과 보물 17점을 비롯하여 약 3만여 점의 불교문화재를 전시하고 있다. 또한 국내 유일의 불교회화 전문박물관이다.

2008년 현재 종합운동장이 2개, 체육관 1개, 테니스장 3개, 게이트볼장이 1개 있다. 북부동의 양산종합운동장은 주경기장 및 실내체육관과 보조경기장을 갖추고 양산시의 주요 각종 체육경기 및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이 고장은 수려한 자연경관과 어우러진 이름난 골프장을 갗추고 있다. 36홀의 근대식 국제적인 골프장인 통도컨트리클럽, 27홀로 짜여진 동부산컨트리클럽, 매곡동의 양산에이원(A · one)컨트리클럽 등이 대표적이다.

읍 · 면
  1. 물금읍(勿禁邑)

시의 중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19.61㎢, 인구 12만 45명(2023년 현재). 면 소재지는 물금리이다. 본래 양산군 지역으로 양산읍 서쪽이 되므로 상서면(上西面)이라 하여 화룡 · 어곡 등 11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어곡 · 유산 등 7개 리로 개편되었다. 1918년 화학동을 물금동으로 고치고, 1939년 면 이름도 물금면으로 고쳤다. 1983년 어곡 · 유산리 및 교리 일부가 양산읍에 편입되었으며, 1996년 읍으로 승격되었다. 북쪽 양산읍과 동면의 경계에 오봉산(五峰山)이 있고, 동쪽으로는 양산읍에서 남북으로 흐르는 양산천이 지나가는데 강변에 평야를 이루고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을 비롯해 보리 · 감자 · 대파 · 가 많이 생산된다. 기후가 알맞기 때문에 우무(寒天)가 잘 되고 생산공장도 있다. 교통은 남서쪽 낙동강변을 따라 경부선이 통과하며, 면의 서남쪽에서 북동쪽으로 양산∼삼랑진 간의 지방도가 지나간다.

문화유적은 물금리 용화사 법당내에 석조여래좌상이 봉안되어 있는데,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김해시 상동면 감로사지(甘露寺址)에 있던 것을 조선 말기에 옮겼다고 한다. 물금리의 물금증산성은 임진왜란 때 축조된 왜성이다. 가촌리에 송담서원(松潭書院), 백수회정려각(白受繪旌閭閣)과 소한정(小閒亭)이 있다.

물금(勿禁) · 증산(曾山) · 범어(凡魚) · 가촌(佳村) 등 4개 리가 있다.

  1. 동면(東面)

시의 중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56.35㎢, 인구 4만 1,121명(2023년 현재). 면 소재지는 내송리이다. 본래 양산군 지역으로 양산읍내 동쪽이 되므로 동면이라 하여 가산 · 금산 등 11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북면의 녹동 · 송정동의 각 일부와 부산부 좌이면의 공창동 일부를 병합해 가산 · 금산 등 8개 리로 개편되었다. 동쪽은 남북으로 흐르는 수영강이 철마면과 경계를 이루며, 다방천(多芳川)이 서북쪽으로 흐르며, 강변을 중심으로 약간의 평야가 전개되고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을 비롯해 배 · 미나리 · 당근 등이 많이 재배되고 있다. 교통은 양산∼부산과 연결되어 있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법기리에 도요지, 금산리에 금호사, 가산리에는 호포성지가 남아 있다.

내송(內松) · 가산(架山) · 금산(錦山) · 사송(沙松) · 여락(余洛) · 법기(法基) · 개곡(開谷) · 석산(石山) 등 8개 리가 있다.

  1. 상북면(上北面)

시의 중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68.47㎢,인구 1만 2,233명(2023년 현재). 면 소재지는 석계리이다. 본래 양산군 지역으로 양산읍에서 북쪽이 되므로 상북면이라 하여 소토 · 대석 등 4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중북면의 상삼 · 좌삼 등 6개 리를 폐합해 소토 · 대석 등 9개 리로 개편 되었다. 동쪽의 원효산, 서쪽의 원동면과의 경계에 있는 염수봉 등에서 발원한 계류가 면의 중앙에 흐르는 양산천으로 흘러든다.

주요 농산물은 당근 · 단감을 비롯해 가축의 돼지와 닭을 많이 길러 양계업으로 계란이 많다. 양산천을 따라 경부고속도로와 부산∼경주 간의 국도가 통과한다.

문화유적은 석계리의 이팝나무, 신전리의 이팝나무, 소토리에 소계서원과 서원의 뜰에는 대원군척화비(大院君斥和碑)가 있으며, 소로서원과 율리정사가 있다. 장방형수혈식의 고분군이 있다. 석계리에는 현효정려(賢孝旌閭)가 있다. 양산천에서는 녹두색 바탕에 흰 석영질이 섞여 이루어진 폭포경석(瀑布景石)과 잔설경석(殘雪景石), 홍옥석(紅玉石)이 유명하다.

석계(石溪) · 소토(所土) · 대석(大石) · 상삼(上森) · 좌삼(左森) · 외석(外石) · 내석(內石) · 신전(新田) · 소석(小石) 등 9개 리가 있다.

  1. 원동면(院洞面)

시의 북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148.02㎢, 인구 3,340명(2023년 현재). 면 소재지는 원리이다. 본래 양산군 지역으로 하서면(下西面)이라 하여 명언 · 지라 등 14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밀양군 하동면 검세리 일부를 병합해 화제 · 서룡 등 8개 리로 개편했는데, 1942년 원동의 이름을 따서 원동면으로 고쳤다. 1962년 이천출장소를 설치하였다. 1979년 용당리 신곡마을을 분동하고, 1991년화제리 토교마을이 분동되어 19개 행정리동으로 구성되어 현재에 이른다. 면의 중남부 지역은 동쪽 상북면과의 사이에 염수봉, 북서쪽 밀양군과의 사이의 향로봉(香爐峰) 등에서 흐르는 물이 합류해 내포천(內浦川)을 이루어 낙동강으로 들어간다.

주요 농산물은 쌀을 비롯해 보리 · 수박 · 딸기 · 매실 등이 많이 생산된다. 영포리에서는 예로부터 닥나무를 원료로 만든 양질의 한지(韓紙)가 유명했고, 원동천(院洞川)상류에는 매화석(梅花石)이 유명하다. 북부는 울주군에서 흘러오는 배내천이 흘러 밀양시의 단양천(丹陽川)으로 흘러든다. 남서 낙동강변을 따라 경부선이 통과하며 양산∼삼랑진간의 지방도가 통과한다.

문화유적은 함포리의 이팝나무, 선리의 느티나무가 있다. 영포리에는 신흥사대웅전이 있으며 용당리에는 가야진사가 있다. 낙동강변에 있는 가야진사, 원리에 세덕사(世德祠), 화제리에 임경대(臨鏡臺, 일명 孤雲臺)가 있다.

원(院) · 용당(龍塘) · 내포(內浦) · 영포(泳浦) · 서룡(西龍) · 화제(花濟) · 선(善) · 대(大) 등 8개 리가 있다.

  1. 하북면(下北面)

시의 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68.65㎢, 인구 7,387명(2023년 현재). 면 소재지는 순지리이다. 본래 양산군 지역으로 하북면이라 하여 용연 · 삼감 등 12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언양군 삼동면 조일동 일부를 병합해 용연 · 삼감 등 8개 리로 개편 되었다. 동쪽의 정족산(鼎足山), 서쪽 원동면과의 사이에 시살 등, 남동쪽의 천성산과 원효산, 북단의 취서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양산천으로 흘러든다. 면의 중앙을 남북으로 흐르는 양산천변은 평야를 이룬다.

주요 농산물은 쌀을 비롯해 당근이 많이 생산된다. 면의 한가운데를 남북으로 경부고속도로와 부산∼경주 간의 국도가 통과해 통도사∼신평간의 지방도가 개설되어 있다. 양산천의 홍옥석(紅玉石)과 통도사 사명암을 중심으로 자생하는 차[茶]와 백록리의 복조리가 유명하다.

문화유적은 백록리의 통도사국장생석표는 1085년(선종 2) 통도사의 토지경계를 표시하는 표지로 세워졌다. 지산리의 통도사대웅전과 통도사은입사동제향로 · 통도사봉발탑, 그리고 통도사와 내원사는 불교유적이 많지만 관광지로서도 훌륭한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다.

순지(蓴池) · 백록(白鹿) · 용연(龍淵) · 삼수(三帥) · 삼감(三甘) · 초산(草山) · 지산(芝山) · 답곡(畓谷) 등 8개 리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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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高麗史)』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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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지지(大東地志),』
『양산시통계연보』(양산시, 2008)
『양산시지』(양산시지편찬위원회, 2005)
『지방행정구역요람』(행정자치부, 2000)
『내고장 전통』(양산군, 1983)
『한국의 여행』부산·경남편(중앙서관, 1983)
『한국지명요람』(건설부국립지리원, 1982)
『한국지명총람』(한글학회, 1980)
양산시(www.yangsan.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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