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리는 여주에서 양평으로 가는 국도변에 위치한 마을인데, 고분은 마을로 들어가는 진입로의 우측(동쪽) 능선에 위치하고 있다.
이 능선은 보통리를 감싸고 있는 해발 100m의 야산이 서쪽으로 내려오면서 형성되었는데, V자형태로 갈라져 있다. 이 갈라진 양쪽 능선의 정상부에 고분이 위치하고 있다.
현재까지 모두 14기의 고분이 확인되었다. 대형분은 봉토의 지름 15∼20m, 높이 3∼5m 가량이고, 중형분은 지름 10∼15m, 높이 2∼3m, 소형분은 지름 5∼6m, 높이 1∼2m 정도이다. 이 중 1기가 1970년에 문화재관리국의 주도로 발굴 조사되었다.
봉토는 지름 12m, 높이 5.5m로서 봉토 정상부에서 180㎝ 아래 지점에 묘실의 천장석이 있다. 묘실의 평면은 정방형에 가깝고, 남벽 중앙에는 긴 연도(羨道)가 딸려 있다. 묘실의 규모는 장변 270㎝(동서), 단변 244㎝(남북)로서 바닥에서 천장까지의 높이는 244㎝이다. 연도는 길이 310㎝, 너비 82㎝이다.
묘실 내에는 북벽에 잇대어서 시상(屍床)을 설치하였다. 벽을 쌓은 방법은 하단을 수직으로 중간부분은 내경(內傾)시키고, 상단은 커다란 돌로 모를 죽여나간 다음, 그 위에 거대한 판석으로 천장을 만들어 일종의 말각천장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벽석 사이의 틈은 작은 돌과 점토로 메웠다.
유물은 이미 도굴로 인해 거의 발견되지 않았고, 두개골편·치아·금동제 이식과 도자(刀子)·원형구(圓形具)·관정(棺釘)·꺾쇠 등의 철기류가 발견되었다. 상면(床面)에 목질이 남아 있어 목관의 규모가 길이 207㎝, 너비 70㎝ 정도로 추정된다.
베개의 방향〔枕向〕은 두개골·치아·이식 등의 배치상태로 보아 동침(東枕)이었음을 알 수 있으며, 단장(單葬)으로 여겨진다.
이 고분의 연대와 성격에 대해서는 명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말각천장은 분명히 고구려적 요소이므로 여주지방이 고구려의 세력권으로 들어간 시기 5세기 후반 이후의 어느 시점일 것으로 여겨진다.
다만, 여주 지역의 소유자가 백제→고구려→신라의 순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보통리고분을 축조한 집단과 그들의 문화적 기반에 대해서는 단정적으로 규정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