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모니는 보리수 밑에서 인연의 법칙을 관찰하여 정각(正覺)을 이룬 뒤 삼칠일(21일) 동안 선정(禪定)의 상태에서 깨달음의 즐거움을 누리는 한편, 자기가 깨달은 인연의 이치를 중생들에게 어떻게 전파할 것인가를 고심하였다. 그러나 정각의 진리가 너무 어려워서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들기 때문에 그대로 열반에 들어 버릴 것을 생각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때의 상태를 연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범천(梵天)이 석가모니 앞에 나타나서 법을 설하지 않으면 사람들의 타락과 고뇌가 더할 것이므로 마땅히 설법해야 함을 간청하였고, 이에 석가모니는 중생교화를 결심하였다. 이때의 석가모니는 연각이 아니라 부처이다.
그러나 불교의 역사상으로는 연각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으며, 연각의 독자적인 가르침도 없다. 대승불교에서는 십이연기(十二緣起)의 법문을 연각의 근본 가르침이라고 하였지만, 이와 같은 구분은 뚜렷한 근거가 있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많은 고승들이 삼승의 법을 밝힐 때 연각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신라의 원효(元曉)는 그의 독창적인 교상판석(敎相判釋)에서, 삼승별교(三乘別敎)의 입장에서 볼 때 연각은 연기경(緣起經)을 공부해야 하지만, 삼승통교(三乘通敎)의 입장에서 볼 때는 『반야경(般若經)』 계통의 경전과 『해심밀경(解深密經)』 등을 공부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 놓았다.
조선 중기의 고승 언기(彦機)는 부처가 성문을 위하여 사제(四諦)를 설하고 연각을 위하여 십이인연(十二因緣)을 설하고, 보살을 위하여 방등(方等)의 법문이나 『화엄경』을 설하였지만, 그 모두가 한 가지 이치에서 설해진 것이고 그 근본이 묘심(妙心)에 있음을 강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