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스크리트어 'trīṇi yānāni'에 대한 한역어, 티베트역은 'thegs pa gsum'이다. '세 가지 수레'라는 의미로, 대승불교에서 성문승(聲聞乘), 연각승(緣覺乘), 보살승(菩薩乘)을 함께 칭하는 말이다. 승(乘, 수레, 탈 것)은 산스크리트어 'yāna'의 한역어로, 부처의 가르침이 중생들을 윤회에서 구제하여 피안(彼岸)으로 건네주는 것을 수레에 비유한 것이다.
삼승의 내용은 한역 『증일아함경(增壹阿含經)』, 『대방등대집경(大方等大集經)』, 『분별공덕론(分別功德論)』, 『구경일승보성론(究竟一乘寶性論)』 등 여러 불전에서 설해지고 있는데, 그것을 개략적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성문승(聲聞乘, śrāvakayāna)은 부처가 음성으로 설한 가르침을 듣고 사성제(四聖諦)의 교법을 수레로 삼아 깨달음을 얻는다. 둘째, 연각승(緣覺乘, pratyekabuddhayāna)은 독각승(獨覺乘) 혹은 벽지불승(辟支佛乘)이라고도 하며 여기에 속하는 이들은 부처의 교설을 듣지 않고서도 12연기를 직접 관하여 깨달음을 얻는다. 셋째, 보살승(菩薩乘, bodhisattvayāna)은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구제한다[上求菩提下化衆生]는 보살행을 의미한다. 보살은 육바라밀(六波羅蜜)을 수행하며 중생을 구제하되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완전한 열반에 들어가는 것을 한없이 유예한다. 이와는 달리 성문승과 연각승은 오직 자신만의 불도를 이루고자 하여 다른 사람을 구제하는 일에는 마음을 쓰지 않기 때문에 소승(小乘)이라 폄칭하고 보살승은 자신이 불도를 이루는 것과 동시에 다른 사람을 두루 구제하는 것에 힘쓰기 때문에 대승(大乘)이라고 한다.
이 외 불전에 따라 성문승과 연각승을 합친 소승(小乘), 보살승을 의미하는 대승(大乘)에 일승(一乘)을 더한 삼승을 설하거나 대승(大乘), 중승(中乘). 소승(小乘)으로 조직된 삼승을 설하는 경우도 있으며, 천승(天乘), 범승(梵乘), 성승(聖乘)의 삼승을 언급하는 경우도 있다.
삼승을 언급한 경전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비유품」에 언급된 화택삼거유(火宅三車喩)라는 비유 설화이다. 본 경전에서는 지혜 제일이라고 하는 사리불이 방편품의 설법을 듣고 지난날 오해하였던 일과 지금에 이르러 진실을 알고 크게 깨닫고 기뻐하며 "옛날에는 부처님께서 보살들에게만 부처가 될 수 있음을 허락하면서 우리들 성문 제자에게는 이에 참여시키지 않았으므로 지극히 슬픈 마음을 가지고 나날을 보냈다. 그러나 그때에도 우리들이 성불의 가르침을 바라고 기다렸으면 부처님은 틀림없이 대승의 가르침으로 우리들을 구하셨을 것이다. 그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부처님이 방편의 가르침을 베푸신 것을 그것이 방편인 줄도 모르고 수행하여 소승의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얻었다. 그러던 중 오늘 법화경의 법문을 듣고 비로소 진실의 가르침인 일불승법(一佛乘法)을 알게 되었고, 종래의 가르침이 소승의 가르침이요, 방편의 가르침임을 알게 되었다."라고 깨닫고 기뻐하였다. 거기에서 부처가 사리불에게 미래에 화광여래(華光如來)라는 부처가 되어 삼승법으로 중생을 교화할 것이라고 수기(授記)한다. 이에 사리불은 자신이 일불승법을 이해하여 수기까지 받았지만, 자기의 도반인 1200명의 아라한들을 위하여 삼승법은 방편이고 일불승법은 진실이라는 설법을 다시 해 주기를 간청하였고, 부처는 이에 응해 다음과 같이 비유를 들어 설법한다.
어느 날 부자가 외출한 사이에 철모르는 아이들이 노는 집에 불이 났다. 아이들은 불이 난 줄도 모르고 뛰어노는데 정신이 없자, 아버지는 한 가지 비책을 생각하였다. 아이들이 평소에 원하던 양이 끄는 수레, 사슴이 끄는 수레, 소가 끄는 수레가 문밖에 있으니, 문밖으로 나와서 마음대로 가지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 아이들은 좋아하면서 모두 문밖으로 나왔다. 우선 아이들은 불난 집에서 피난한 것이다. 그러나 문밖에는 양이 끄는 수레, 사슴이 끄는 수레, 소가 끄는 수레가 아닌 큰 흰 소가 끄는 수레가 준비되어 있었다.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약속한 양이 끄는 수레, 사슴이 끄는 수레, 소가 끄는 수레 대신 이 세상에도 드문 큰 흰 소가 끄는 훌륭한 수레를 선사한 것이다. 아이들은 뜻하지도 않았던 큰 수레를 선물로 받고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위없는 기쁨을 느꼈다. 이것이 화택삼거의 비유 설화이다.
이 이야기 속의 부자인 아버지는 부처, 아들들은 성문연각의 소승, 불난 집은 고해인 이 세상, 세 가지 수레는 성문, 연각, 보살의 삼승법, 한 큰 흰 소의 수레는 일불승법이다. 부처는 생사의 고해에서 헤매고 있는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얼마 동안은 성문 · 연각 · 보살의 삼승법을 방편으로 베풀었지만, 결국에는 일불승법이란 진실한 가르침으로 일체 중생을 제도한다는 것을 비유한 이야기이다.
이때 삼승 중 보살승과 일불승법의 관계가 문제가 된다. 『묘법연화경』은 삼승 모두를 포섭하는 일불승을 설정하였으나 본래 보살승이 대승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므로, 보살승과 일불승의 동이(同異)관계를 놓고 동아시아 불교 논사들 사이에 이견이 생겼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일본 천태종의 승려 사이쵸[最澄, 766-822]와 법상종(法相宗)의 승려 도쿠이치[德一, ?-843] 간에 이루어졌던 ‘삼권일실논쟁(三權一實論諍)’이다. 이것은 단순히 일본 내에서의 논쟁으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불교의 구원론과 관련한 철학적 담론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불교 철학사에서도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