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의 유민으로, ‘열주의(列周義)’라고도 한다. 발해의 유민들이 세운 후발해에서 남해부도독(南海府都督)으로 활약하였다.
발해왕실이 붕괴된 직후에는 후당(後唐) 등에 발해사신이 계속해서 왕래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압록부 일대를 거점으로 활약하였던 대씨정권(大氏政權)인 이른바 후발해의 사신들이었다.
그는 935년 12월에 조공사신으로 후당에 다녀왔고, 그 다음해 2월에도 후당에 갔다가 검교공부상서(檢校工部尙書)의 벼슬까지 받고 돌아왔다. 이 때 같이 간 발해의 정당성공부경(政堂省工部卿) 오제현(烏濟顯)은 시광록경(試光錄卿)의 벼슬을 받았다.
이들은 중국 오대왕조에 왕래하였던 후발해의 마지막 사신들이었다. 938년에는 박승(朴昇) 등 3,000여호가 고려로 투화하였던 사실로 보아 오대의 후진(後晉, 936∼946) 초에는 열주도 일파가 대씨에 이어 정권을 잡은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이는 970년 정안국왕(定安國王) 열만화(列萬華)가 그의 이름으로 송나라에 사신을 파견하였던 사실도 참고가 된다. 남해부도독이라는 직함을 통하여 알 수 있는 사실은 남해부가 오늘의 함경북도 지방인 옛 발해의 남경남해부였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는 후발해의 위력이 옛 남경남해부까지 미쳤던 것을 시사하는 점이라 하겠다.
그렇다면 옛 동경용원부·중경현덕부 등 두만강 하류일대도 후발해의 위력 밑에 있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