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고구려의 내사군(奈巳郡)이었는데, 신라의 파사이사금 때 신라 영토로 되어 군을 설치하였다. 757년( 경덕왕 16)에 내령군(奈靈郡)으로 고쳐 삭주(朔州) 소속의 군이 되었다.
940년( 태조 23) 강주(剛州)로 고쳤으며 1018년( 현종 9)에 길주(吉州 : 지금의 安東)의 임내가 되었다. 1143년( 인종 21) 순안(順安)으로 바꾸어 현령을 두었다.
1259년( 고종 46) 위사공신(衛社功臣) 김인준(金仁俊)의 외향(外鄕)이라 하여 지영주사(知榮州事)로 승격되었고, 1413년( 태종 13)에 1,000호 미만의 군현 중 ‘주(州)’자가 붙은 곳을 ‘천(川)’이나 ‘산(山)’으로 바꾸는 원칙에 의하여 영천군으로 바꾸었다. 1895년( 고종 32)에는 안동부(安東府)에, 다음해에는 경상북도의 군이 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영주군이 되었다.
영천의 옛 지명인 내사(奈巳)나 내령(奈靈)은 이두식 표기로 천성(川城)의 뜻이다. 그 뒤 역적 최항(崔沆)의 난을 진압하여 1258년에 위사공신으로 추대된 고려 무신정권의 김인준의 고향인 이곳을 영예스러운 곳이라 하여 영주라고 하였다. 조선시대에 영천의 행정구역은 여러 곳에 흩어져 있었다.
순흥 지역의 소백산맥 남쪽에 답곡(畓谷) · 소천(韶川) · 지곡(枝谷)이 있었고, 봉화(奉化) 남쪽에 임지(林只), 예불령(禮佛嶺) 남쪽에 북창(北倉) 등이 영천에 대해 월경지(越境地)로 존재하였다. 이들 지역은 대부분 부곡의 형태로 존재하였다. 당시에 영천 지역은 낙동강 상류인 임천(臨川)유역에 자리잡고 있어 교통과 군사상의 요지였다.
북쪽으로는 소백산맥의 죽령(竹嶺) · 관적령(串赤嶺) · 마아령(馬兒嶺)과 통하는 도로가 있었고 남쪽으로는 안동 · 예안 · 예천 등지와 연결되었다. 이곳의 성내산(城內山) 봉수는 죽령 봉수에 이어져 영남 지방과 호서 지방을 연결시켰다. 역참(驛站)으로 창보역(昌保驛) · 평은역(平恩驛)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