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효신(馬孝愼)’이라고도 표기되어 있다. 주로 일본에 사신으로 내왕이 많았다. 841년(함화 11) 정당성(政堂省) 좌윤(左允)으로 있으면서 같은 좌윤 하복연(賀福延)과 함께 판관(判官)으로 일본에 파견되어 정오위하(正五位下)의 관등을 제수받았다.
847년 가을에 다시 같은 좌윤 왕문구(王文矩)와 함께 부사로 일본에 파견되어 종사위상(從四位上)의 관등을 제수받았다. 858년(건황 2) 겨울에도 대사(大使)로서 104인을 거느리고 일본에 다녀왔다.
다음해 정월에도 일본에 파견되었으나, 세이와왕[淸和王]의 선제(先帝)인 분도쿠왕[文德王]의 죽음으로 인하여 당시 수도인 경도(京都)에 들어가지 못하고 가하(加賀)에 머물러 있었다.
3월에 일본왕이 보낸 사신들을 만났고, 5월에야 발해왕의 서신과 선물을 전달할 수 있었다. 이에 청화왕으로부터 명주[絁] 50필과 면(綿) 4백돈(屯), 그리고 정오위하의 관등까지 제수받았고, 6월에 일본왕의 서한과 선물을 가지고 귀국하였다. 이때 서한에는 일본왕이 마효신의 문무와 충효정신을 크게 칭찬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