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4년(영조 20년) 작. 비단 바탕에 채색. 세로 199.5㎝, 가로 147.5㎝. 이 그림은 중앙에 지장보살이 앉아 있고 우측[向左]에 무독귀왕(無毒鬼王) 및 4보살, 좌측[向右]에 도명존자(道明尊者)와 4보살이 시립한 것이다. 마치 아미타팔대보살도와 같은 구도를 보여 주는 작품이다.
본존 지장보살은 머리에 두건을 쓴 모습이다. 붉은색의 두건 장식이 귀 뒤로 늘어져 있으며, 오른손에 투명한 보주, 왼손에 석장[六還杖]을 들고 있다. 둥근 얼굴에 활형[弓形]의 눈썹, 가느다란 눈, 작은 입 등이 특징적이다. 잔잔한 꽃무늬로 가장자리를 댄 붉은색의 가사는 왼쪽 어깨 아래로 옷자락을 모아 금니(金泥)의 보석 핀으로 고정시켰다. 특히 왼손에 걸쳐진 가사의 평행한 옷주름 선은 퍽 도식화되어 불합리한 면을 보여 준다.
도명·무독귀왕을 비롯하여 8보살 등 지장의 협시들은 모두 둥글고 앳된 표정, 정제되고 평온한 분위기 등이 지장의 얼굴 표정과 흡사하다. 그런데 이들의 자세, 보살들의 보관, 의복, 세부 문양, 전체적으로 감도는 차분하고 조용한 분위기 등은 옥천사에 봉안되어 있는 삼장보살도와 거의 흡사하다. 그것은 두 불화가 같은 해(1744년), 같은 화사에 의하여 제작되었다는 점에 기인한다.
색채는 녹색과 붉은색이 주가 되었다. 그리고 곳곳에 금니를 사용하였다. 비수가 거의 없는 필선은 획일적이다. 특히 옷자락 같은 곳은 형식화된 느슨한 필치를 보여 주고 있다. 화기에 의하면 이 불화는 1744년 4월 통정대부 치백(致伯)의 시주에 의하여 금어(金魚: 畫僧)인 등계(登階)를 비롯하여 모두 14명의 화가들이 제작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인물들의 모습이라든지 그림의 수법 등이 18세기 중엽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경상남도 창녕관룡사(觀龍寺)의 지장보살도와 비슷하다. 그래서 18세기 중엽 경상도 지방에서 활약하던 화승의 유파에 의하여 제작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