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평소 송시열(宋時烈)의 학덕을 흠모하면서 향리인 지금의 전라남도 나주시 노안면 금안리 부근의 용산(龍山)에 용암(龍庵)이라는 누정을 짓고 생활하였는데, 이 시조는 「귀거래사(歸去來辭)」·「지지가(知止歌)」 등의 시조와 함께 이곳에서 지은 작품이다.
1914년 저자의 후손 기우(基禹)가 간행한 『서원연고(瑞原聯稿)』 권2 부록 말미에 ‘번곡(飜曲)’이라 하여 실려 있다.
작품내용은 다음과 같다. “용산(龍山)이 놉고놉고 백운(白雲)이 깁고깁다/줄업는 거문고럴 뉘 아라 들을 손야/두어라 낙화만전계(落花滿前溪)ᄒᆞ니 세상(世上) 알ᄭᅡ ᄒᆞ노라.”
『열자(列子)』에 나오는 거문고의 명인 백아(伯牙)가 자신의 거문고 소리를 알아주었던 종자기(鍾子期)가 죽자 거문고 줄을 끊고 다시는 손을 대지 않았다는 고사를 인용하여, 속세와의 인연을 끊고 선경에서 홀로 유유자적한 생활을 하겠다는 마음을 표현한 작품이다.
이는 시조의 전성기라 할 수 있는 숙종·영조 시대의 활발한 시조 창작활동의 한 면모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특히 시조의 이칭으로 ‘번곡’이라고 한 용례를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