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134.8㎞. 유역 면적 3,397㎢. 각고산 남쪽 계곡을 흘러 영흥군 횡천면 산성리에서 흘러오는 하천과 합쳐지고 다시 창평에서 입석천(立石川)과 합류한다.
영흥군 선흥면 용반리 북쪽에 이르러 동북쪽에서 나온 단속천(端屬川)과 합류하여 동남류하면서 영흥읍을 거쳐 덕지강과 합류한다. 문천군 명구면과 영흥군 억기면의 경계에 이르러 영흥만의 북부 송전만으로 흘러든다. 용흥강은 여러 지류가 합류하면서 영흥(지금의 금야)에 충적평야를 만들었다. 이 평야는 함경남도의 주요 곡물 생산지 중 하나이다.
또한, 주민들의 농지 관개 수리로 이용되며, 유량이 풍부하여 선흥면, 고원군 고원읍까지 수운이 이용되었다. 강의 상류는 산악이 중첩되어 있어 홍수 피해는 적은 편이나, 용흥평야 일대에는 매년 두세 차례 범람한다.
홍수는 1165∼1890년 사이에 15회의 기록이 있고, 1186년, 1729년, 1739년, 1829년 및 1860년의 홍수는 1,000여명의 인명 피해를 내었던 대홍수였다고 한다.
하천 조사에 의하면 수위 관측 이후인 1914∼1927년 사이에 12회의 홍수가 기록되었으며, 그 중에서 215명의 익사자를 낸 1919년의 홍수가 가장 컸던 것으로 보인다. 1926∼1936년에는 평야 부분의 홍수 방어를 위하여 유로 주변에 제방을 쌓기 위하여 하천 개수 공사가 시행되었다.
고려시대에는 화주고을을 가로 흐르는 강이라 하여 횡강(橫江) 또는 요락지(瑤樂池)라고 하였다. 명칭은 조선 태종 때 봉사(奉使)로 온 하륜(河崙)이 술좌석에서 순문사(巡門使) 강회백(姜淮伯)에게 “여기가 환조(桓祖)의 복거지(卜居地)요, 태조가 출생한 고향이니 그 이름을 용흥강이라고 지어 부르자.”는 데에서 연유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