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일산동 유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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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일산동 고분군 유구 노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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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문화
유적
울산광역시 동구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구덩식돌방무덤 · 굴식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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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울산광역시 동구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구덩식돌방무덤 · 굴식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내용

(주)현대중공업 공장을 지나 방어진 쪽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일산만의 배후에 형성된 완만한 경사지에 있다.

이 일대는 오래전부터 도로개설 등 도시화과정을 거치면서 구릉 상부가 잘려나가고 일부지역은 마을민들이 경작지로 이용하던 곳이다.

이 유적이 학계에 알려지게 된 것은 일산동지역에 대한 울산시의 유원지 개발계획이 입안되고 부지조성을 위한 굴착공사가 진행되던 중 뜻밖에 삼국시대 후기의 토기가 확인되면서 실시된 구제발굴조사를 통해서이다.

발굴조사는 1994년 11월 30일부터 1995년 1월 6일까지 약 38일간 창원대학교박물관에서 실시하였다. 발굴조사 결과, 6∼7세기대의 삼국시대 후기고분이 36기 조사되었고, 토기류와 철기류 150여 점이 확인되었다.

삼국시대 고분은 일산동 마을 배후에 형성된 야트막한 구릉에 형성되어 있었다. 유구는 횡구식석실분·수혈식석곽묘·옹관묘뿐만 아니라 이례적으로 삼국시대 후기의 토광묘까지 다양한 편이다. 그러나 이 유적은 대부분 경작지였던 관계로 유구의 상부는 삭평되었기 때문에 대부분 유물층만 남아 있는 정도이다.

석실분은 구조가 거의 횡구식이며 평면형태는 방형계가 압도적으로 많다. 봉토부와 석실 상부는 유실되어 유구의 바닥부 시상과 유물층만 온전히 남아 있었다. 수혈식석곽묘는 평면형태가 장방형도 있으나 길이가 1m 남짓한 석관형에 가까운 소형분도 다수 조사되었다.

이 고분군에서 특이한 것은 6∼7세기대의 토광묘의 존재이다. 토광묘는 울산을 포함한 영남의 타 지역에서 확인된 예가 거의 없다. 토광묘는 내부에 목관을 안치한 것, 바닥면을 낮게 더 파거나 석침을 갖춘 것도 확인되어 울산지역 삼국시대 후기 고분의 양상을 새롭게 검토할 자료이다.

옹관묘는 삼국시대의 일반적인 합구식옹관묘가 아니라 둥글게 묘광을 파고 옹을 수직으로 세우고 그 위에 돌로 덮은 특이한 구조이다.

이 외에 토기만 매납하는 수혈유구가 있다. 원형의 작은 구덩이를 파고서 그 안에 고배와 완 등의 토기류만 6∼7점 매납하거나 인화문이 시문된 토기병을 단독으로 매납하고 있어 제사 유구의 한 예로 추정된다.

울산 일산동고분군의 축조인들은 삼국시대 후기인 6∼7세기경 일산만의 해안가를 소경제적 기반으로 하여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이들이 남긴 고분과 출토유물은 일산만을 중심으로 한 울산지역뿐만 아니라 당시 신라권역의 신라고분 연구에 있어 중요한 고고자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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