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전기 개경의 본궐(本闕) 안에 있던 회경전(會慶殿) 남쪽에 문루를 세우기 위해 위봉루를 건립하였다.
고려 전기 개경의 본궐 안 회경전 남쪽에 있던 누정(樓亭)이다. 이곳에서 문무백관(文武百官)과 백성들의 조하(朝賀)를 받거나 과거의 방(榜)을 내걸어 급제를 하사하는 등 경사스러운 일을 많이 행하였다.
936년(태조 19) 9월 태조가 후삼국 통일 후 처음 문무백관과 백성들의 조하를 받은 일에서 첫 이름이 보인다. 958년(광종 9) 5월에는 광종이 후주(後周)에서 고려로 귀화한 쌍기(雙冀)의 건의를 받아들여 과거를 처음으로 실시하고 친히 위봉루에 거둥하여 방을 붙이고 최섬(崔暹) 등에게 급제를 하사하였다.
981년(성종 즉위년) 8월 성종이 이곳에서 대사면령을 내리고 문 · 무관을 1급씩 승진시켰다. 997년(목종 즉위년) 12월 목종이 이곳에 임어(臨御)하여 사면령을 내리고 효자와 순손(順孫)을 칭찬하고 장려하였으며, 누명을 쓰고 죄를 받은 이들의 죄를 씻어 주고 아프고 병든 자들을 구제하였다. 또한 문 · 무관과 승려들의 관등을 1급씩 올려 주고, 국내의 산천신령에게 모두 훈호(勳號)를 덧붙여 주었다.
1010년(현종 1) 11월에는 현종이 팔관회(八關會)를 다시 열고 친히 이곳으로 나아가 음악연주를 관람하였다. 한편, 1107년(예종 2) 12월에 예종이 이곳에 친림하여 윤관(尹瓘) · 오연총(吳延寵) 등 고려 삼군(三軍)의 장수에게 부월(斧鉞)을 내려 여진(女眞) 정벌에 파견하였다.
위봉루는 개경 본궐 안에 있던 대표적인 누정으로서, 문무백관의 조하, 과거의 설행, 대사면령 포고, 문 · 무관 승진, 팔관회의 설행, 고려 삼군의 출정식 등 국가의 중대사가 간혹 이곳에서 시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