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용제(用濟), 호는 반곡(盤谷). 김제 출신. 검한성사(檢漢城事) 유원현(柳元顯)의 8세손으로 좌랑 유태형(柳泰亨)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능성구씨(綾城具氏)로 구대인(具大仁)의 딸이다.
김장생(金長生)·조평(趙平)의 문하에서 형 유집(柳楫)과 함께 성리학을 공부하여 도학과 절행이 뛰어났으므로, 세상사람들이 옛날 주돈이(周敦頤) 문하의 정호(程顥)·정이(程頤) 형제와 같다고 추앙하였다.
1633년(인조 11)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형 유집과 함께 격문을 돌리고 창의하였는데, 격문에 감동한 청장년 수백 명이 모여들자 군량을 모아 진군하였으나 과천에 이르러 화해하였다는 비보를 듣고 북녘을 바라보며 통곡하였다.
고향에 돌아와 세상을 등지고 시서(詩書)를 즐기면서 후진 교육에 심혈을 기울였다. 1660년(현종 1) 통선랑(通善郎)에 제수되고 그 뒤 제용감참봉(濟用監參奉)·동몽교관 등에 임명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문장이 뛰어나고 예학에 정통하였다. 김제의 백석서원(白石書院)에 배향되었으며, 저서로 『반곡유고(盤谷遺稿)』 2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