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 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말사이다. 627년( 무왕 28)에 중국에서 건너온 유마운(維摩雲)과 그의 딸 보안(普安)이 창건하였다. 고려시대에는 부속암자인 귀정암(歸靜庵) · 금릉암(金陵庵) · 운성암(雲城庵) · 사자암(獅子庵) · 오미암(五味庵) · 은적암(隱寂庵) · 남굴암(南窟庵) · 동암(東庵) 등과 함께 수많은 승려들의 수행도량으로 이용되었다.
17세기 무렵 경헌(敬軒)이 중건하였고, 그로부터 약 50년 뒤에 가안(可安)이 나한상을 조성하였다. 1889년( 고종 26)에는 전라도관찰사 김규홍(金奎弘, 1845∼?)이 중수하였다. 그러나 6·25전쟁 때 이 절과 부속암자들은 모두 소실되었고, 그 뒤에도 오호연 · 김해은 등의 승려들이 중수하였다. 최근에 주지 박상규가 재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정면 3칸의 대웅전과 산신각 · 백운당(白雲堂) · 종각 · 요사채 2동이 있다. 원래 이 절에 있던 범종은 구례 화엄사로 옮겨졌으며, 현재 종각에는 종이 없다. 절의 서쪽 계곡에는 널따란 바위다리가 놓여 있는데, 그 바위 한쪽 편에는 ‘維摩洞川普安橋(유마동천보안교)’라고 새겨져 있다. 이 보안교는 보안이 옮겨온 것이라고 전해진다. 보안교를 놓기 위하여 모후산 중턱에서 많은 인부들이 이 바위를 운반하려고 온 힘을 기울였으나 험한 산길이라 작업 진도가 부진하였을 때 보안이 치마폭에 이 바위를 싸더니 유유히 들고 와서 놓았다는 전설이다. 보안은 적벽근처에 보안사를 창건하였으며, 유마사의 약수인 제월천(濟月泉)에 얽힌 전설도 전해지고 있다. 보안교 건너 서쪽으로 150m 지점에는 해련탑(海蓮塔)과 또 하나의 부도가 있는데, 모두 도괴되어 있던 것을 1981년 화순군에서 복원하였다. 이 중 해련탑은 1992년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창건자 유마운의 부도라고 전해지고 있다. 이 밖에도 절 입구에는 높이 1.5m의 경헌대로사리탑(敬軒大老舍利塔)이 있는데, 대석의 네 모서리에는 사자 · 호랑이 · 돼지의 조각과 이름을 알 수 없는 동물들이 새겨져 있다. 또한, 옛 절터에는 많은 기와조각들이 산재하고 있어 거찰이었던 옛날을 말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