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문화(文化). 초명은 유응룡(柳應龍), 자는 운보(雲甫) 또는 경오(景悟). 조산만호(造山萬戶) 유승적(柳承績)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증좌승지 유유(柳濡)이다. 아버지는 강화부경력 유질(柳秩)이며, 어머니는 진주유씨(晋州柳氏)로, 첨사 유저(柳渚)의 딸이다.
사마시를 거쳐 1585년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에 보직되고 전적(典籍)·병조좌랑을 역임했다. 이어 함경도 경성에서 군무(軍務)를 맡고 있다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걸어서 평안도 성천까지 가서 세자를 시종하였다.
이듬해에는 선조를 호종하고, 병조좌랑·전적·평안도도사·장령·문학 등을 역임하였다. 1596년 지원병을 요청하기 위하여 급고주문사(急告奏聞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명나라에 가서 명군을 조선에 출병하게 하는 데 큰 활약을 하였다. 이듬해 정유재란 때 명군을 영남 지방에 인도하였으며, 장례원판결사를 지냈다. 1598년 호조참의·여주목사를 거쳐, 1601년 고성군수로 나아가 이민(吏民)을 다스렸다.
1604년 청병의 공로로, 선무공신(宣武功臣) 3등으로 문흥군(文興君)에 봉하여졌다. 이듬해 한성부우윤으로 도총부부총관을 겸하였다. 1606년 진주부사(陳奏副使)로 다시 명나라에 다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