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선일(善一). 호는 돈재(敦齋). 아버지는 유후원(柳厚源)이며, 어머니는 초계정씨(草溪鄭氏) 정덕량(鄭德良)의 딸로, 합천 용주면(龍洲面) 가호리(佳湖里)의 세장(世庄)에서 태어났다. 송병선(宋秉璿)·최익현(崔益鉉)·유종원(柳鍾源)·전우(田愚)·정재규(鄭載奎)의 문인이다.
약관에 과거를 보려고 상경했다가 과장(科場)의 풍기가 문란함을 보고는 과거를 단념하고 돌아와 성리학에 몰두하였다. 1895년(고종 36) 단발령(斷髮令)이 내리자, 스승들과 거의(擧義)하는 계획에 참여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스승인 최익현과 정재규를 따라 노성(魯城)에 모여 의병을 일으키려하다가, 순창(淳昌)에서 최익현이 거의하자마자 일경(日警)에 체포되니, 유상대는 통곡하면서 시를 지어 항일(抗日)의 뜻을 밝혔다.
1910년 나라가 망하자, 소산서당(素山書堂)에서 후진 양성에 전념하여 학규(學規)를 정하고 상읍례(相揖禮)를 행하면서 쇠퇴해 가는 유학의 진작에 힘을 기울였다. 유상대는 『태극도설(太極圖說)』·『통서(通書)』 등을 깊이 연구하였으며, 성리설을 밝힌 것도 많았다. 저서에 『돈재문집(敦齋文集)』 9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