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여중(勵仲), 호는 지강(芝岡). 유홍경(柳弘慶)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유유일(柳惟一)이다. 아버지는 판결사 유사규(柳思䂓)이며, 어머니는 이숙(李淑)의 딸이다.
1582년(선조 15) 사마시를 거쳐 1599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06년 면천군수를 거쳐 예조좌랑·병조정랑·함경도도사·집의·판결사·강원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 광해군 때에 이이첨(李爾瞻)이 폐모론을 주장할 때 반대하는 여론을 일으키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 때 서궁(西宮)에 입직하면서 반정군이 들어올 때 궁궐의 호위를 완화시키는 임무를 수행하였고, 인조의 뜻에 의하여 정사공신(靖社功臣) 3등에 녹훈되고 청천군(菁川君)에 봉해졌다.
반정 뒤 병조·공조의 참판을 역임한 다음 외직을 구하여 양주목사로 나갔다. 1625년(인조 3)에는 사은부사(謝恩副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반정 초에는 경연에서 이이(李珥)를 문묘에 종사하자고 주장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우찬성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충정(忠靖)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