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용회(用晦). 유경(兪㯳)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유명익(兪命益)이다. 아버지는 판관 유정기(兪正基)이며, 어머니는 이인(李𡐔)의 딸이다.
1699년(숙종 25)에 통덕랑으로서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정언(正言)·지평(持平) 등을 역임하였다. 1703년 지평으로 있을 때에 북한산성 쌓는 일을 중지하고 기민을 구하라는 상소를 올려, 왕이 가납하는 등 신임을 얻었다.
소론계 소장 인물로 노론측에서 박세당(朴世堂)이 주자(朱子) 사서집주(四書集註)를 훼손한 일로 문제를 제기하였을 때 박세당을 옹호하였다. 1705년 소론 임보(林溥)와 남인 이잠(李潛)이 세자(世子: 뒤의 景宗) 모해설이 있다고 노론 김춘택(金春澤)을 공격하였는데, 이에 연루되어 신문을 받았으나 혐의가 없어 풀려났다.
그 뒤 아버지가 후취(後娶)와 이혼하는 문제로 논란이 있자 관직에서 물러났다. 문장이 뛰어나 재상 윤지완(尹趾完)도 칭송한 바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