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사숙(思叔), 호는 성암(省庵). 중종반정의 공신 유순정(柳順汀)의 후손이며, 유장운(柳長運)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유관(柳綰)이고, 아버지는 유정진(柳挺晉)이며, 어머니는 박태정(朴泰定)의 딸이다.
1723년(경종 3)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이듬해에 정언(正言)이 되었다. 영조가 즉위하자 지평(持平)으로 등용되어 정언과 지평을 번갈아 하였다. 1728년(영조 4)에 문학(文學), 이듬해에 헌납(獻納)을 거쳐 수찬(修撰)으로 임명되었다.
그 뒤 부교리·부응교·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1731년 광주부윤(廣州府尹)에 임명되고, 이듬해 대사간에 발탁되었다. 1735년 충청도관찰사, 1739년 황해도관찰사, 1743년 경기도관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예조판서를 지낸 뒤 1745년 형조판서가 되고, 그 해 한성부판윤에 임명되어 청양군(菁陽君)에 봉해졌다.
1729년 천추절(千秋節)을 맞이하여 왕실의 만수무강을 비는 차자(箚子)를 올려, 왕으로부터 『근사록(近思錄)』 한 질을 상으로 받았다. 또, 그 해 시독관(侍讀官)으로 있으면서 외방사찰(外方寺刹)의 요승(妖僧)을 엄단하여 사찰의 정화를 단행하였다. 문장으로 이름이 높았다. 시호는 혜정(惠靖)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