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광역시 출생.
경성고등공업학교(京城高等工業學校) 건축과 재학 중 『조선과 건축 朝鮮と建築』 잡지의 표지 도안 현상에 출품하여 가작 입선하였으며, 1931년 졸업 작품으로 「아파트」를 출품하였다.
졸업 후 오가와(小河弘道)의 도움으로 조선총독부 영선계에 들어가 10여 년간 관청 청사의 설계와 감리 업무를 맡아 했다. 그에게 영향을 준 건축가는 김순하(金舜河)였는데, 광주세무감독국·광주사범학교·지원병훈련소·수원농림고등학교·청량리고등학교 등의 설계 및 감리가 이 때 이루어진 것이다.
해방이 되면서 건설업계로 나아가 1946년에는 토건회사를 자영하기도 하였는데, 미군정청에서 시행하는 김포비행장 공사 등 서울의 토목공사 일을 주로 맡아서 하였다. 또한 이균상(李均相)의 권유로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건축과에서 건축시공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함흥의 명보극장(1940), 서울 청운동의 김여수박사댁(1940)과 종로의 임가장빌딩(1946)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