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자여(子輿), 호는 낙봉(駱峯). 형조참판 유빈(柳濱)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유말손(柳末孫)이다.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유계장(柳季漳)이며, 어머니는 조효생(趙孝生)의 딸이다. 영의정 유영경(柳永慶)의 증조부이다.
1486년(성종 17) 사마양시에 합격하고, 1489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연산군 초년에 만언소(萬言疏)를 올려 기휘(忌諱)에 크게 저촉되어 외직으로 나아가 충청수사가 되었으나, 1504년(연산군 10) 중앙으로 돌아와서 대사간이 되었다.
이 때 신수영(愼守英)이 무함하여 갑자사화가 일어나자 소(疏)를 올려 임사홍(任士洪)·유자광(柳子光)의 음모와 이극균(李克均)이 죄도 없이 살해당한 사실을 논하였다가 제주도로 귀양을 갔으며, 동료사간 강숙돌(姜叔突)도 이를 간하다가 또한 귀양가게 되었다.
1506년 중종반정 뒤에 방환(放還)되어 돌아오다가 왜구들에게 살해당하였다. 성품이 엄하고 굳세며 도량과 기국(器局)이 있어 삼사를 두루 역임하면서 굴하지 않았다. 청백리(淸白吏)에 녹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