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중길(仲吉), 호는 둔정(鈍靜)·만회(晩晦). 윤영(尹泳)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윤지선(尹止善)이다. 아버지는 부윤 윤이(尹理)이며, 어머니는 이의윤(李義胤)의 딸이다.
1690년(숙종 16)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1710년 증광문과에 갑과로 급제, 숭릉직장(崇陵直長)이 되었다. 1714년 지평을 거쳐 필선·장령·헌납·집의 등을 역임하였다. 1716년 병신처분(丙申處分) 뒤 노론 권상하(權尙夏)를 무고한 오명윤(吳命尹)의 처벌을 요청하였다.
그 뒤 1719년 동부승지·사간·우부승지를 지냈고, 이듬해 경종의 즉위로 소론이 득세하자 사직하였다가 다시 사간에 재임되었다. 1722년(경종 2) 동래부사로 재임중에 신임옥사로 노론이 실각하고 소론이 집권하게 되자 사직하고 물러났다.
1724년 영조가 즉위하면서 노론이 재집권하자 판결사·참찬관이 되었다. 이 때 귀양가있던 정호(鄭澔)의 서용을 청하여 이를 실현시켰고, 그 뒤 도승지를 거쳐 병조참판에 이르렀다. 저서로는 『문견록(聞見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