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파평(坡平). 형조판서 윤계겸(尹繼謙)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윤욱(尹頊)이다. 아버지는 파산부원군(坡山府院君) 윤지임(尹之任)이며, 어머니는 이덕숭(李德崇)의 딸이다. 중종의 계비 문정왕후(文定王后)의 오빠이자, 윤원형(尹元衡)의 형이다.
왕실의 외척으로서 동생인 윤원형과 함께 권세를 잡아, 권신이던 김안로(金安老)와 대결하다가 1537년(중종 32) 파직, 유배되었다. 이 해에 김안로가 사사(賜死)된 뒤 풀려나왔다.
김안로가 권세를 부릴 적에 동궁(東宮: 뒤에 인종)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윤임이 중종에게 아뢰어, 윤원형과 함께 윤원로를 외직으로 내쫓았을 때부터 소위 대윤·소윤의 싸움이 비롯되었다.
동궁이 장성하도록 아들이 없이 병약하였는데, 세자를 바꾸어 세운다는 소문을 만들어 길거리에 전파시키기도 하고, 또는 대군(명종)이 위태롭다는 말을 퍼뜨려 대윤·소윤의 대립은 격화되어갔다.
1544년 인종이 즉위함으로써 대윤의 세력이 확대되어 파직당하였으나, 이듬해 인종이 재위 8개월 만에 죽고 명종이 즉위한 뒤 군기시첨정(軍器寺僉正)으로 등용되었다. 1545년(명종 즉위년) 7월, 윤인경(尹仁鏡) 등의 탄핵으로 파직, 해남으로 유배되었다가 이듬해 석방, 귀환되었다.
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에 기용되어 윤원형과 권세를 다투었으며, 공신에 참여되지 못함을 분히 여겨 자주 불평을 말하다가 윤원형의 족질이며 심복인 병조좌랑 윤춘년(尹春年)의 탄핵을 받아 파직, 유배되어 배소에서 사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