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성원(聲遠), 호는 구산(龜山). 합천 삼가 출신. 아버지는 윤언효(尹彦孝)이다.
1585년(선조 18)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부정이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향리에서 박사겸(朴思謙)·박사제(朴思齊)·노순(盧錞)·조계명(曺繼明) 등과 함께 의병을 모집, 의병장으로 곽재우(郭再祐)와 더불어 많은 공을 세웠다.
정암진전투(鼎巖津戰鬪)에 이어 개령·김산(金山)·지례 등지에 출몰하는 적을 치는 의병장 김면(金沔)을 도와 분전하는 한편, 웅천(熊川)·창원·김해·고성·사천의 적이 진주를 공격할 때 김시민(金時敏)을 도와 참전하였다. 1593년 제2차 진주혈전에 참가하여 김천일(金千鎰)·최경회(崔慶會) 등과 함께 분전하다가 전사하였다.
병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1등에 녹훈되었다. 촉석정충단(矗石旌忠壇)에 병향(並享)되고, 삼가의 구연서원(龜淵書院)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