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경임(景任), 호는 기기재(棄棄齋). 관찰사 윤세림(尹世臨)의 후손이며, 판관 윤청(尹淸)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참봉 윤민신(尹民新)이고, 아버지는 승지 윤길(尹日+吉)이다. 어머니는 증참판 이세량(李世良)의 딸이다. 유계(兪棨)와 교유하였다.
1662년(현종 3)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1664년에 정언을 거쳐 전적·공조좌랑·병조정랑·장령·헌납이 되었다. 당시 서필원(徐必源)의 파직상소 사건 때에는 이경휘(李慶徽)·유상운(柳尙運)과 함께 삼간(三奸)의 한 사람으로 불린 일도 있었다.
그 뒤 1672년 세자시강원문학이 되고, 뒤에 필선·보덕·사예·예빈시정·함평현감·삼척부사를 역임하고 옥천군수를 거쳐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1674년 현종이 죽자 갑인예송이 일어났는데, 사간으로 송시열(宋時烈)의 편에 들었으나 곧 파직되었다. 1676년 진주목사가 되었다가 병으로 사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