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령총(銀鈴塚)은 경주고분군의 일련번호가 노서동 140호분인 호우총(壺杅塚)의 북편에 위치하며 일련번호는 ‘노서동 139호분’이다. 1946년도에 국립박물관에서 발굴 조사한 뒤 그 자리만 보존되고 있다.
이 고분은 경주고분군의 일반적인 신라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墳〕이다. 발굴 전에 봉토는 이미 유실되었으나 발굴 당시 고분 기저부에 둘렀던 둘레돌〔護石〕의 일부가 발견되어 이를 근거로 봉분의 지름을 20m, 높이 5m 정도로 추정 복원하였다.
고분의 기저부 일부는 호우총과 겹친 것으로 보아 발굴자들은 두 고분이 본래 표형분(瓢形墳)이었을 것으로 추정했으나 적극적인 증거가 희박하다. 남북으로 아주 가까이 인접해 있었던 별개의 고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돌무지 부분은 상부가 많이 파괴되었으나 표면에는 점토가 덮여 있었다. 대체로 덧널〔槨〕이 놓인 곳의 윗부분인 동서 4.5m, 남북 2.5m 범위의 돌무지에는 단(丹)이 칠해져 있었다.
덧널은 지하에 동서로 긴 구덩식토광〔竪穴式土壙〕을 파고 그 안에 설치되었다. 덧널의 바닥은 토광의 바닥에 냇돌을 깔고 그 위에 다시 잔 자갈을 깔아 구축하여 원래의 지표에서 약 1.5m 아래에 있다. 덧널 안에는 서쪽으로 약간 치우쳐 가운데에 머리를 동쪽으로 둔 피장자가 안치된 널〔木棺〕을 놓았고 널의 동쪽에는 중요 껴묻거리〔副葬品〕들이 놓여 있었다.
널 안에서는 금동관(金銅冠), 금제관드리개〔金製冠垂飾), 금제귀걸이, 곱은옥〔曲玉〕이 달린 유리구슬목걸이, 은제팔찌와 반지, 은제허리띠, 띠드리개〔腰佩〕등의 장신구가 피장자가 착장했던 상태대로 출토되었다.
널의 서쪽 밖에서는 금동제 신발이 출토되었다. 널의 둘레에는 원래 널의 밑을 괴었던 것 같은 덩이쇠〔鐵鋌〕가 줄을 이어 있었다.
널 내부의 장신구를 제외한 이 고분의 출토유물을 살펴보면, 은방울〔銀鈴〕과 금제 머리용 장신구, 자루부분이 금·은으로 장식된 작은손칼·쇠투겁창〔鐵矛〕·쇠도끼·철제 화살촉·쇠낫 등의 무기 또는 이기(利器) 등이 있다.
마구류로는 안장틀〔鞍橋〕의 철제복륜(鐵製覆輪), 철제발걸이, 금동장(金銅裝) 멈추개가 붙은 재갈, 금동장 종모양말띠드리개〔鍾形杏葉〕등이 있다. 용기류로는 ‘십(十)’자형 손잡이가 달린 청동합(靑銅盒)·쇠솥·칠기(漆器), 각종 신라토기 등이 있다. 그 외에 가락바퀴〔紡錘車〕1점과 볍씨껍질 약간이 채집되었다.
피장자는 명확히 알려진 바가 없으나 출토된 유물에서 큰칼이 발견되지 않고 가락바퀴가 출토된 점 등으로 보아 이 고분의 주인공은 신라의 귀족여성으로 판단된다. 이 고분의 축조연대는 신라 돌무지덧널무덤 중 후기에 속하는 5세기 말경에서 6세기 전반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