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선리 고분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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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정보
정읍 은선리와 도계리 고분군 중 은선리 고분군 전경
정읍 은선리와 도계리 고분군 중 은선리 고분군 전경
고대사
유적
문화재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영원면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구덩식돌방무덤 · 굴식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이칭
이칭
정읍은선리고분군
시도지정문화재
지정기관
전북특별자치도
종목
전북특별자치도 시도기념물(1981년 04월 01일 지정)
소재지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영원면 은선리 1-3번지
목차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영원면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구덩식돌방무덤 · 굴식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개설

1981년 4월 1일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지정면적은 110,768㎡이다. 이 고분군은 고부면에서 북방으로 4㎞ 떨어져 있는데, 현재 고부지역에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본래는 고부군의 관할이었고 역사상 고부와 관계가 깊다. 탑동마을의 동쪽에는 천태산(天台山)이 있어 남방의 두승산에 연결되며, 천태산은 다시 서남방으로 지맥이 뻗어내리는데, 이 산줄기가 형성된 구릉의 남쪽에 마을이 자리잡고 있다. 남으로 뻗은 능선과 서남의 지맥 사이로 이루어진 대지 안에 수십 기의 고분이 산재해 있다. 이 고분군은 백제계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墓〕으로 모두 파괴되고 10기만이 1973년 전주시립박물관에 의해 조사되었다.

이후 2005년 지표조사를 통해 이 고분군이 3개 지점(A · B · C고분군)에 43기가 분포하고 있음이 추가로 확인되었으며, 2008∼2009년에 걸쳐서 1기의 고분이 발굴조사되었다.

내용

은선리고분군에서 가장 먼저 조사되어 그 유형이 파악된 것은 A고분군에 해당하는 10기의 무덤이다. 돌방은 깬돌〔割石〕을 이용하였으며 벽면 위쪽을 안으로 기울여 천장 폭을 좁혔고, 동쪽에 널길〔羨道〕이 달려 있다. 판석(板石)을 사용한 돌방은 위쪽 천장면석 사이에 안기울임시킨 장대석(長臺石)을 끼워 단면 6각형을 만들고, 앞면 중앙에 짧은 널길을 설치해 부여 능산리고분과 같은 형식을 나타냈다.

또한 그 중간의 과도적 형태인 아래쪽 벽면은 면석(面石)을 세우고 윗면은 깬돌이나 장대석을 안기울임시킨 것이 있어 백제시대 돌방무덤의 변천을 엿볼 수 있다. 이를 형식별로 구분하면 다음과 같다.

① 제1유형: 안쪽에 다듬은 판석을 맞추어 세워 장방형 돌방을 짜고 양측벽면 위쪽에는 안기울임시킨 장대석을 끼워 천장 폭을 좁힌 뒤 천장돌을 얹어 단면 6각형으로 널방〔玄室〕을 축조하였다.

뒷벽은 1장의 판석을 단면에 맞추어 수직으로 세웠으며, 앞면 양귀에는 귓기둥을 세워 널방 폭을 좁혔다. 널방 입구에는 판석으로 된 막음돌을 세우고 널길은 중앙에 짧게 설치해 뚜껑돌〔蓋石〕을 얹었다(A · B · C · D · P호분).

② 제2유형: 깬돌로 네 벽면을 쌓고 동편한 널길을 설치하였다. 널방 벽면 위쪽은 차차 안기울임시켜 천장 너비를 좁히고 뚜껑돌을 얹었고 바닥에는 얇게 깬돌을 깔았다.

널방 천장 높이는 다른 돌방에 비해 가장 높다. 동편한 널길은 역시 깬돌이나 냇돌을 쌓고 뚜껑돌을 덮었으며 입구는 냇돌로 막았다. 이러한 유형은 ‘E호분’ 단 1기뿐이다.

③ 제3유형: 제2유형에서 제1유형으로 바뀌어가는 과도적인 형식이다. 장방형 돌방에 동편 입구와 널길이 있는 것은 제2유형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아래쪽 벽면은 넓은 판석을 수직으로 세우고 그 위에도 안쪽을 다듬은 장대석을 쌓아올렸으며, 위로 가면서 차차 작아지고 혹은 꺾든가 둥글게 안기울임시켜 그 위에 천장돌을 얹었다. 다만, 앞뒷벽을 수직으로 세웠거나 안기울임시킨 차이가 있을 뿐인데 이 역시 과도적인 형식이다(G · H · L · N호분).

제1유형의 대표적인 것은 A호분으로서 가장 남쪽에 자리한다. 돌방은 장축이 서남방향이다. 널방의 바닥은 길이 2.24m, 너비 1m이고, 천장 높이는 1.19m로서 석재는 화강암이다. 널길은 길이 38㎝, 높이 80㎝, 두께 22㎝의 판석을 양편에 세우고 뚜껑돌을 덮었다.

유일한 제2유형인 E호분은 장축이 남서방향이다. 잡석으로 벽면을 쌓고 3장의 넓은 뚜껑돌을 가로 맞추어 덮었다. 널방 바닥은 길이 2.44m, 너비 1.7m이며, 천장 높이는 1.66m로서 길이에 비해 너비 · 높이가 넓고 높은 편이다.

널길은 동쪽벽이 널방벽과 일직선인 동편 널길이다. 바닥 너비는 0.75m이나 동벽도 안기울임해 윗면은 0.65m로 줄었다. 길이 1.24m, 높이 0.85m이며, 그 위에 2장의 뚜껑돌을 덮고 바깥 입구는 냇돌로 막았다.

제3유형은 판석과 잡석을 혼용한 돌방으로서 대표적인 것은 N호분뿐이다. 서남방향에 동편한 널길이 있는 돌방이다. 널방은 길이 2.73m, 너비 1.90m, 천장 높이 1.63m이다. 네 벽은 0.95m 높이부터 안으로 꺾여 천장 길이 1.92m, 너비 1.10m로 줄었다. 앞면은 너비 1m, 높이 0.8m의 판석으로 서쪽을 막고 동쪽에 0.9m 너비의 입구를 남겼다. 널길은 길이 1.35m, 높이 0.8m이다.

제3유형은 공주지방의 제2유형이나 남원 초촌리 제1유형과 구조 · 석재 · 수법 등이 비슷해 축조연대가 6세기 전반기에 해당한다. 제1유형은 부여 능산리 중상총(中上塚) · 서하총(西下塚) 등과 같은 백제 말기형식이므로 연대가 7세기 전반기에 해당한다.

의의와 평가

은선리고분군이 위치한 지역은 백제시대의 고사부리군(古沙夫里郡)으로 사비시대의 지방제도였던 5방(五方) 중의 하나인 중방(中方)의 고사부리성(古沙夫里城)에 해당하는 곳이다.

이 고분군은 공주시대에서 부여시대 말기에 걸친 약 1백년 동안의 묘역이었다. 이에 선행하는 백제고분으로는 은선리 북방의 운학리나 은선리 지사(知士)마을에 있는 구덩식돌방무덤〔竪穴式石室墳〕이 있어 이곳이 공주시대 이전부터 백제의 중요한 요충지임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한국고고학전문사전-고분편-』(국립문화재연구소, 2009)
『한국고고학사전』(국립문화재연구소, 2001)
「고부·은선리고분군」(전영래,『전북유적조사보고』2, 전주시립박물관, 1973)
관련 미디어 (1)
집필자
김선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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