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간본은 박은(朴誾, 14791504)이 죽은 지 3년 뒤에 친구인 이행(李荇, 14781534)이 박은과 교유하던 여러 친구들에게 흩어져 전해오던 시문을 수집하여 1책으로 엮어 간행하였다. 초간본은 현재 전하지 않는다.
아들 박공량(朴公亮)이 흩어져 있는 시문을 다시 수집하여 『천마잠두록(天磨蠶頭錄)』을 별도로 엮었다. 이후 손자인 박유(朴愈)와 박무(朴懋)가 초간본과 『천마잠두록』 을 합하여 상 · 하 2권으로 꾸미고, 심수경(沈守慶)에게 부탁하여 발문을 첨가하였다.
그 뒤로 간행된 판본으로는 현종 연간에 간행된 4권 1책의 운각인서체자본(芸閣印書體字本)과 계묘년(癸卯年)에 간행된 판본이 있다. 계묘년 간행본은 운각인서체자본을 보완하고, 고시 · 절구 · 율시 · 연구 등으로 구분하여 2권 1책으로 엮은 것이다. 또한 숙종 연간에 간행된 2권 1책의 목판본과 필사본이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에 있다.
현재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판본은 정조가 직접 1795년(정조 19)에 2책으로 증간한 어제본(御製本)으로 간행지는 순천(順川)이다. 이 판본은 그때까지 전해지던 여러 판본을 토대로 『천마잠두록』에서 12수, 『허암집(虛巖集)』에서 2수, 『해동묵적(海東墨蹟)』에서 2수, 『용재집(容齋集)』에서 1수, 『속동문선(續東文選)』에서 1수를 보충한 것이다. 심환지(沈煥之)가 권수에 정조의 어제 서문과 목록을 실었고, 부록으로 초간본 중간본 서문 3편을 수록하였다.
『읍취헌유고(挹翠軒遺稿)』는 본집 4권과 부록(附錄)을 합해 2책으로 간행되었다.
권 1부터 권 3까지는 주로 시(詩)가 수록되었다. 시체별로 정리되어 있으며, 이보다 앞서 간행된 문집에서 증보한 작품에는 출전을 따로 밝혀 놓았다. 권 1에는 정조의 어제 서문, 총목, 목록이 실려 있고, 부(賦) 1편, 사언고시(四言古詩) 1수, 오언고시(五言古詩) 41수가 수록되어 있다. 권 2에는 칠언고시(七言古詩) 26수, 오언절구(五言絶句) 6수, 칠언절구(七言絶句) 33수가 수록되었으며, 권 3에는 오언율시(五言律詩) 54수, 칠언율시(七言律詩) 61수, 1502년 이행, 남곤(南袞), 이영원(李永元) 등과 잠두(蠶頭)를 유람할 때 함께 지은 연구(聯句) 1편이 실려있다. 한편, 권 4에는 문(文)이 수록되었다. 기(記) 1편, 제문(祭文) 1편, 행장(行狀) 4편이 실려 있다. 기와 제문은 김인로(金仁老)에 대한 것이며, 행장은 박덕림(朴秀林), 조모 한씨(韓氏), 부인 신씨(申氏), 안호(安瑚)에 대한 것이다.
부록으로 이행이 지은 묘지명, 김원행(金元行)이 지은 묘표를 실어 두었고, 끝에 초간본과 중간본에 있던 이행과 정두경(鄭斗卿), 유득일(兪得一)의 서문이 붙어 있다.
이 문집은 박은의 작품 세계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박은은 우리나라 한문학사에서 해동 강서시파(江西詩派)의 맹주로 추대된다. 일찍이 신위(申緯)가 “해동에도 또한 강서파가 있었으니, 늙은 나무 스산한 기운의 읍취헌이라네.[海東亦有江西派 老樹春陰挹翠軒]”라고 일컬은 이래로, 박은은 황정견(黃庭堅)과 진사도(陳師道)를 배운 해동의 강서시파로 알려져 왔다. 또한, 두보의 시를 중시한 정조는 박은의 시가 보여주는 ‘종일(縱逸)’, ‘천성(天成)’, ‘정성(正聲)’이야말로 치세의 화평한 시라고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