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상십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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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인물
삼국시대 화엄종의 시조인 의상 밑에서 배출된 뛰어난 10명의 용어.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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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삼국시대 화엄종의 시조인 의상 밑에서 배출된 뛰어난 10명의 용어.
개설

곧 오진(悟眞)·지통(智通)·표훈(表訓)·진정(眞定)·진장(眞藏)·도융(道融)·양원(良圓, 또는 亮元)·상원(相源, 또는 常元, 相元, 相圓)·능인(能仁)·의적(義寂) 등이다. 이들은 의상 십대제자(義湘十大弟子)·의상 십대덕(義湘十大德)·의상 십성제자(義湘十聖弟子) 등으로도 불렸는데, 모두 화엄종의 승려였다. 이들은 모두 성인으로 존경받았지만, 진정·상원·양원·표훈 등은 더욱 뛰어나 사영(四英)으로 일컬어지기도 하였다.

또한 ≪송고승전 宋高僧傳≫에서는 지통·표훈·도신(道身) 등을 큰 알 속에서 껍질을 깨고 날아간 가루라(迦羅), 즉 새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새들이라고 하였다.

도신은 ≪삼국유사≫에서 밝힌 10대 제자 중에서 빠져 있지만, 그가 의상의 직제자였음은 스승으로부터 수업하고 그 강의내용을 기록하여 저술한 ≪도신장 道身章≫ 2권을 남긴 일로도 알 수 있다. 10대 제자에 대한 전기가 전해지고 있었지만, 현재는 단편적 기록만이 남아 있다.

특히 진장·도융·능인 등은 그 이름만 보일 뿐이고, 오진·양원·상원 등에 대한 전기도 거의 전하는 것이 없다. 의적은 의상의 10대 제자라는 기록이 보이지만, 그는 법상종(法相宗) 승려로 의상의 제자가 아니었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표훈은 신라 때 흥륜사 금당십성(興輪寺金堂十聖) 중의 한 사람으로 추앙받았다. 그는 경주의 황복사(皇福寺)에 머무르기도 하였고 금강산에 표훈사(表訓寺)를 창건하기도 하였다. 또, 황복사에 있을 때에는 대정(大正)에게 화엄을 강의하기도 하였는데, 이는 김대성(金大城)의 불국사 및 석굴암 창건과 관련하여 주목된다. 대정과 대성은 동일인이기 때문이다. 그는 경덕왕과 깊은 인연을 맺기도 하였다. 조선 초기까지 ≪표훈삼성밀기 表訓三聖密記≫가 전해지기도 하였다.

진정은 출가 이전에 군대에 속해 있었고, 가난하여 복역하는 여가에 품을 팔아 홀어머니를 봉양할 정도로 효성이 지극하였는데, 태백산의 의상 문하에 귀의하여 뛰어난 제자가 되었다.

이량공(伊亮公)의 가노(家奴)였던 지통은 7세에 낭지(朗智)의 문하에서 출가하였다가 뒷날 의상의 제자가 되었다. 그는 의상이 추동(錐洞)에서 ≪화엄경≫을 강의할 때, 그 내용을 기록하여 ≪추동기 錐洞記≫ 2권을 저술하였고, 스승한테서 ≪법계도인 法界圖印≫을 전수받기도 하였다.

오진은 하가산(下柯山) 골암사(鶻巖寺)에 살면서 밤마다 팔을 뻗쳐 부석사의 석등에 불을 켰다고도 한다. 양원은 의상의 ≪화엄일승법계도≫에 대한 주석서를 저술하였는데, 현존하지 않는다.

참고문헌

『삼국유사(三國遺事)』
『송고승전(宋高僧傳)』
『법계도기총수록(法界圖記叢髓錄)』
『법장화상전(法藏和尙傳)』
「신라화엄학승(華嚴學僧)의 계보와 그 활동」(김상현, 『신라문화』 1,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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